#1. 고백하건대 나는 툭하면 과속, 신호 위반을 한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도로에서 빨간불에 걸리면 단속 카메라가 있는지 살펴보고 액셀을 밟는다. 뻥 뚫린 길을 달릴 땐 똑똑한 내비게이션을 믿고 스피드를 즐긴다. 그래도 지금까지 딱지를 떼인 건 고작 두어 번이다. 물론 난폭운전을 할 때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데 곧이곧대로 법을 지키는 건 왠지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것 같다는 느낌이 앞선다. 교차로 황색 신호에서 다들 속도 높여 꼬리를 물고 건너는데 나만 정지하면 추돌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며 스스로 합리화도 한다.
이런 나는 이제 언제라도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12일부터 시행된 개정 도로교통법이 난폭운전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범칙금 딱지를 받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다. 경찰은 15일부터 다음 달 말까지 집중단속에 나선다. 과속이나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 같은 다소 무거운 위법 외에 급제동, 안전거리 미확보, 소음 발생 등 ‘사소한’ 것까지도 단속 대상이다. 둘 이상을 연달아 하거나 하나라도 지속·반복하면 최대 500만 원의 벌금, 1년까지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2. 서울대 대학원까지 나온 창창한 30대가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시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택배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딱 걸렸다. 560여 차례에 걸쳐 1억 원어치를 훔친 혐의로 이달 초 구속된 그의 여죄(餘罪)는 수백 건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경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다 2014년 말 퇴사한 뒤 이렇다 할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그는 지난해 설 연휴 때 서울 잠실 자신의 집 주변에서 누군가의 현관에 놓인 선물세트를 보고 충동적으로 슬쩍했다. 다행히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한 번이 두 번이 됐고, 활동무대도 넓어졌다. 훔친 물건을 자급자족하는 데서 더 나아가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려 짭짤한 수입을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택배상자에 붙은 의뢰서를 보고 비싸고 수요가 많은 물건을 골라 훔치는 대담함도 보였다.
#3. 골프만큼 독특한 운동도 없다. 야구나 축구, 농구처럼 심판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부정(不正)의 유혹에 넘어가기 십상이다. 공이 깊은 러프에 파묻혔을 때, 벙커에 빠졌는데 높은 턱이 가로막고 있을 때, 숲 속에서 큰 나무가 스윙을 방해할 때 많은 골퍼들은 먼저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악마가 속삭인다. “뭐 어때? 조금만, 아주 조금만 공을 옮겨. 그게 무슨 큰 허물이야?”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내 친구는 이런 유혹에 굴복해 상습적으로 동반자를 속인다.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프로도 아닌데 우리끼리 왜 그래?”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두주불사(斗酒不辭)형이면서도 라운딩 전날에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을 정도로 골프를 사랑하는 그 친구를 필드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졌다.
정직과 사소한 잘못 사이에는 작은 ‘문턱’이 있다. 넘어도 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이다. 여기서 양심을 도외시하고 문턱을 한번 넘어서면 용감해진다. 도덕의식은 희박해지고 ‘이왕 이렇게 된 것’이라는 태도가 생긴다(‘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댄 애리얼리). 부정은 전염성도 강하다. 차량 없는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인내심이 약한 한 명이 먼저 무단횡단을 감행하면 우르르 뒤따르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다.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면 개인이나 사회나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다. 최근 잇따라 불거진 자녀 학대, 시신 훼손 사건도 처음에는 별 죄책감 없이 단순한 손찌검에서 비롯됐다. 범죄는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온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