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회 시정연설 직전 국회의장실에서 이뤄진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국회 회동에선 정부의 최근 대북 정책을 놓고 긴장감이 돌았다.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였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독대까지 요청해 ‘훈수’를 두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23개월 만에 만난 김 대표에게 “오랜만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는 “입술까지 부르트시고 수고가 많으시다”고 덕담을 건넸다. 김종인 대표가 “갑작스럽게 (개성공단 조업 중단) 결정을 한 데 대해 소상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자 박 대통령은 “그래서 오늘 제가 국회에 왔다”고 짧게 답했다.
환담이 시작되자 이종걸 더민주당 원내대표는 “통일 대박에서 개성공단 폐쇄로 너무 왔다 갔다 한 거 아닌가”라며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외교 전략으로 갑작스럽게 돌아선 데 대해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통일을 이뤄 가는 과정에서 단호한 대처, 핵 위기 극복을 위한 단호한 대처가 모순되는 게 아니다”라며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응징해야 하고, 그러나 대화의 끈은 열어 놓는 것이다.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라고 응수했다.
김종인 대표는 “중국을 너무 믿지 말라. 중국은 외교에서도 바깥 언급과 속생각이 상당히 다를 수가 있다”며 “내면적 협상을 잘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중국과 노력해 왔고, 하고 있다”며 “유럽연합도 독자적인 제재를 하는데 한국은 당사자이니 더욱 선도적으로 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시간이 흐르는 게 참 무섭다”며 “북한의 핵무기가 시간이 흐르며 고도화된다면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에 “이슬람국가(IS) 등도 제3자를 통해 파고들 수 있는데 우리가 미리 방어해야 한다”며 “테러방지법이 꼭 통과되길 부탁드린다. 정보 수집권을 국정원에 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이 원내대표는 “그동안 국정원이 불법 활동을 통해서 국민을 불안하게 했는데 또다시 새로운 국내 정보 수집 권한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각을 세웠다.
25분여간의 회동이 끝난 뒤 다른 참석자들은 퇴장하고, 박 대통령은 김종인 대표와 3분가량 독대했다. 더민주당 김성수 대변인은 “김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더 이야기하자’고 해 별도로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시정연설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개성공단의 폐쇄 이유와 불가피성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 달라”고 했고, 박 대통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한편 이날 박 대통령은 진회색 정장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여야 의원들은 기립해 대통령을 맞았다. 박 대통령은 밝은 표정으로 의원들에게 눈인사를 건넸지만 단상에 오른 뒤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약 30분 동안 진행된 박 대통령의 연설 도중 16번의 박수가 나왔다. 여당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기립 박수를 보낸 뒤 너도나도 환송을 하겠다며 통로로 몰려갔다.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은 박 대통령이 자신을 지나치자 “대통령님, 저 여기 있어요”라고 외쳤고, 박 대통령이 되돌아와 웃으며 악수하기도 했다. 비박(비박근혜)계인 유승민 의원은 연설 내내 두 손을 모으고 경청한 뒤 박 대통령의 퇴장을 멀리서 지켜봤다.
반면 문재인 전 더민주당 대표 등 야당 의원 대다수는 연설 도중에 박수를 치지 않았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국민 모두의 결연한 의지와 단합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하는 대목 등에서 두 차례 박수를 쳤다. 이날 여야 간에 견해차가 큰 노동개혁법을 다루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민주당 이인영 은수미 의원 등은 박 대통령이 퇴장하기 전 먼저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