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만드는 규제, 혁신中企-소상공인에겐 3년 면제 추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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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해소 종합대책]

《 폐가죽 재활용업체인 ‘아코플레닝’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재활용 기술을 지난해 11월 개발해 특허 등록까지 마쳤지만 공장을 짓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경기 포천·의정부·파주·양주시 등 4개 지자체에 공장 신축 허가를 신청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폐기물 재활용 업체는 지역주민들의 인식이 좋지 않아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보통 폐가죽 재활용업체와 달리 이 업체는 신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폐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이 회사 기술이 공장에서 실제 적용되면 국내서 연간 1000t씩 쓰레기로 배출되는 폐가죽이 인조가죽으로 탈바꿈해 돈이 된다. 아코플레닝 김지언 대표는 “친환경 재활용 소재산업은 세계적으로 유망 산업으로 꼽히는데, 우리는 규제에 발목을 잡혀 보유하고 있는 기술조차 활용하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했다. 》

○ 규제 혁신으로 경기 선제적 대응

정부가 규제 패러다임까지 바꿔 가면서 대대적인 규제개혁안을 마련한 것은 한국 경제가 수출 급락, 내수 침체, 안보 위기란 ‘3중고’에 직면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써보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재정건전성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규제완화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경제 활력을 키울 수 있는 수단이다.

하지만 그동안 규제개혁의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정부가 규제개혁안을 쏟아내도 일선 공무원들이 ‘소극행정’으로 일관해 목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극행정이란 공무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 생활에 불편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 투자를 지연시키고, 예산 손실까지 발생시킨다. 정부가 공무원들의 소극행정을 ‘그림자 규제’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개혁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의 한 자동차부품 업체가 지난해 강서구 부산국제물류산업단지 내 1800m² 정도의 용지를 매입했지만 아직까지 공장을 이전하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사업지에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분해하는 시설을 갖추려 한 것이 문제가 됐다. 부산시는 해당 용지의 입주 가능 업종에 ‘폐차업’이 없다는 이유로 이 시설의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담당 공무원은 당초 계약대로 부품을 들여와 가공하는 것만 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부산 상공계 관계자는 “용지 이용 업종을 하나 추가해주면 쉽게 해결될 일”이라며 “기술력이 뛰어나 활발한 수출이 가능한 기업인데 이해하지 못할 규제에 발목을 잡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 지방 그림자 규제도 손질

그림자 규제는 중앙보다는 지방정부에 더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각종 인허가권을 손에 쥐고 있는 지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는 내부 지침을 이유로 들어 인허가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각종 인허가가 겹치는 개발사업의 경우 복합민원으로 일괄 처리할 수도 있지만 개별 과별로 허가를 받도록 해 민원인들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선출직 공무원인 지자체장들은 공사로 인한 소음, 주거 환경 침해 등 지역주민의 민원에 더 민감하다”고 말했다.

자동인허가제나 협의 간소화 제도가 전면 확대 도입되면 이런 그림자 규제로 인한 사업 지연은 대폭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들이 사업 추진을 위해선 지자체의 눈치를 봐야 하는 만큼 드러내놓고 억울함을 호소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명시적인 규제 사안이 아닌데 행정현장에서 규제로 활용된 각종 신고제도도 재정비한다. 행정기관에 단순히 알리기만 하면 되는데도 행정부의 심사를 받았던 규정들이 대상이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기업이나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경제규제에 대해선 새로운 규제를 만들 수 없도록 할 계획이다. 일명 ‘규제 순증 제로(ZERO)화’다. 다만 규제 도입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일몰 규정을 넣어 역할이 다했을 때엔 반드시 해당 규제를 없애줄 방침이다. 국내 스타트업 기업이나 혁신 중소기업, 소상공인에 대해선 최소 3년간 규제 적용을 유예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표적인 ‘손톱 밑 규제’로 꼽히는 인증 규제 정비도 계속 추진해 나간다.

○ 신산업 육성 위한 규제개혁

정부는 드론, 헬스케어, 사물인터넷, 스마트자동차, 3차원(3D) 프린팅 등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개혁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기술 개발 단계에서부터 제품 생산, 판매 및 마케팅에 이르는 전 과정을 모니터링해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규제들을 개선한다는 것. 특히 해외 사례와 비교해 과도한 규제는 과감히 줄일 계획이다.

또 규제 적용이 되는지 불분명한 ‘규제 그레이존(Gray Zone)’에 대해선 일단 사업을 허용한 뒤 상황에 따라 보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신규 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독려하기 위한 일종의 패스트 트랙(Fast Track)인 셈이다.

모바일에 기반을 둔 신규 창업에 장애가 되는 규제도 대폭 풀기로 했다. 한국규제학회가 건의한 55건의 창업규제가 최우선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관계자는 “현장 점검과 조사를 대폭 확대해 규제개혁안이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를 철저히 확인하겠다”고 강조했다.

▼ ‘규제 온상’ 의원입법, 비용 계산해 공개한다 ▼

국회 차원 규제영향평가 추진… 2015년 7월이후 의원입법 1356건

규제 2610개 늘어나… 법안당 1.9개


대학생들이 창업한 모바일 중고차 거래중개 업체인 ‘헤이딜러’는 지난달 초 창업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불법 업체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은 온라인 경매업체도 오프라인 영업장(3300m² 이상 주차장, 220m² 이상 경매실)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기존 사업자들의 기득권을 과도하게 보호하는 규제란 비판이 제기됐지만 국회는 불과 두 달여 만에 일사천리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렇듯 의원입법을 통해 규제가 신설되거나 강화되는 일이 잦아 정부의 각종 규제개혁안이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원입법 규제 현황을 보면 지난해 7월 1일 이후 발의된 법안 1356개에서 규제 조항 수는 2610개에 이른다. 법안 한 건당 규제 조항이 1.9개나 있는 셈이다. 일부 부처는 의원들에게 부탁해 법안을 발의하는 청부입법도 남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규제개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의원입법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우선 정부는 국회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규제영향평가를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3권 분립을 감안한 조치다. 국회 입법조사처나 예산정책처가 정부의 ‘규제비용 자동전산 시스템’을 활용해 의원입법이 가져오는 규제비용을 계산한 뒤 이를 기업과 국민에게 공표하는 식이다.

의원입법이 발의되기 전에 미리 규제영향평가를 받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의 통과에도 힘을 모을 계획이다. 2013년 관련 법안이 제출됐지만 모든 의원입법에 적용하는 것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는 최소한 사회·경제적으로 파급력이 큰 규제만이라도 사전에 영향평가가 적용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 6단체와 한국규제학회 등 민간단체가 중심이 돼 의원입법에 대한 규제감시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정부 관계자는 “대못 규제를 양산하는 의원입법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 부산=강성명 / 임현석 기자
#규제#혁신#종합대책#의원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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