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맞선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이틀째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의 현역 의원 10명 컷오프(공천 배제) 발표로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기록 경신 경쟁을 하며 ‘바통터치’를 이어간 것이다. 전날 더민주당 김광진 의원의 첫 필리버스터 발언은 5시간 34분 동안 이어졌다. 국민의당 문병호 의원에 이어 세 번째로 등장한 더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 동안 발언을 했다. 1969년 8월 3선 개헌 반대 발언에 나선 박한상 신민당 의원의 국내 기록(10시간 15분)을 깬 것이다.
은 의원은 “테러방지법으로 주인에게 개목걸이를 채우려는 시도에 대해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새누리당 김용남 원내대변인은 은 의원을 향해 “그런다고 공천 못 받아요!”라며 소리치고 은 의원이 발끈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김 원내대변인은 기자들을 만나 “(비례대표인) 은 의원이 (토론을 시작하며) ‘성남 중원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은수미다’라고 했다. 본회의 발언을 하면서 예비후보 등록을 소개하는 의원이 어디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 의원들의 무제한 토론이 사실상 지역구 선거운동이라는 얘기다. 은 의원은 발언 도중 테러방지법과 무관한 복지 사각지대와 관련한 발언을 해 새누리당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여론전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여당은 40여 년 만에 이뤄진 필리버스터가 국민적 관심을 끄는 게 내심 불안하다. 야당이 약자로 비치면 4·13총선에서 ‘동정여론’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이 망국법임을 지금 체험하고 있다”(김무성 대표) “식물국회의 끝을 보고 있다”(조 원내수석부대표) 등 무제한 토론이 야당의 ‘몽니’라고 강조하고 나선 이유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우리가 기다리는 게 최고의 압력”이라며 “더이상 양보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선거구 획정안 처리를 두고 야당이 ‘외통수’에 걸렸다는 얘기다.
반면 더민주당은 필리버스터에 대한 높은 관심에 반색하고 있다. 이날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필리버스터, 테러방지법 등과 함께 무제한 토론자들의 이름이 모두 상위권에 올랐다. 그러자 필리버스터 신청이 급증했다.
더민주당은 여론의 압력을 느끼면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 수정 요구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김종인 대표의 ‘우클릭’ 행보에 불만을 가진 야권 지지층이 재결집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선거구 획정안 처리가 골칫거리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르면 26일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야당이 계속 필리버스터를 고집하면 선거구 획정 지연의 책임도 고스란히 져야 한다.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관망하고 있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국회의장과 각 당 대표들이 합의를 도출할 때까지 끝장토론을 하자”며 중재자를 자처했다. 야권 관계자는 “필리버스터에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들도 참여한 만큼 야권 연대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