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봐서 다리가 엄청 길다 싶은 사람을 제외하곤 남성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바지? 그거 다 길잖아요. 당연히 줄여서 입죠.” 허리둘레에 따라 길이가 다양한 바지를 만들지 않고 허리둘레 한 사이즈에는 한 가지 길이의 바지만 생산하는 탓이다. 다리가 짧아 보이는 것도 짜증나는데 ‘롱다리’는 내지 않을 수선비까지 추가로 부담하니 배도 아프다. 직장인에게 필수품인 드레스셔츠도 그렇다. 목둘레에 맞추면 팔이 길고, 팔에 맞추면 목이 졸린다는 남성이 많다. 딱 맞지 않으니 팔과 목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둘 모두에 맞지 않는 어정쩡한 사이즈를 고르게 된다. 업체에서도 나름대로 표준 체형에 맞춘다고 애쓰는 모양이지만 매장에 나온 바지나 셔츠를 산 다음 수선하는 수고 없이 입을 수 있는 남성은 극소수인 것 같다.
‘32×30’은 허리둘레 32인치, 다리길이 30인치 바지라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허리둘레마다 다양한 길이의 바지를 생산 판매한다. 셔츠도 목둘레와 가슴둘레, 팔 길이가 여러 조합으로 생산돼 매장에서 저마다 다른 체형의 손님을 기다린다.
맞춤형 옷은 좋다. 첫째, 옷 입는 사람의 만족감이 과거보다 한층 높아진다. 물론 이런 맞춤형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면 맞지 않는 옷을 평생 입어도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불편 속에 지내다 맞춤형을 입게 되면 만족감은 훨씬 커진다. 둘째, 자원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무턱대고 긴 바지를 만드는 탓에 싹둑 잘려 나가는 옷감과 수선비, 그에 수반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사회적 낭비다.
훨씬 다양한 사이즈로 제품을 생산하려면 설계부터 포장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생산 공정을 거쳐야 한다. 매출에 별 차이가 없다면 업체로선 귀찮기 그지없는 맞춤형을 내놓을 이유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복지 정책에 ‘맞춤형’의 싹이 보이고 있다. 전에는 직장맘이든 전업주부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린이집 비용을 지원했다. 어린이집에 안 보내던 사람도 앞다퉈 보내기 시작했지만 야간에 이용해야 할 사람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손님’에게 딱 맞지 않다 보니 그야말로 허리에만 맞는 긴바지를 입힌 모양새였다. 복지 확대라는 명분만 있고 실제에선 낙제점이었단 뜻이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들어 보육정책에서 ‘맞춤형’을 강조하고 있다. 하루 12시간을 쓸 수 있는 종일반은 맞벌이나 구직 중인 가정, 장애인 가정 등이 이용 대상이다. 이외에는 하루 7시간을 쓸 수 있는 맞춤반을 이용하면 된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부정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시간제보육반 대상 가정에선 최대 월 80시간 어린이집을 쓸 수 있다. 야간에 일하는 부모를 위해선 ‘시간연장 보육제’를 만들어 밤 12시까지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어느 곳에 무엇이 필요한지 잘 살펴 정부부처가 좀 더 바쁘게 움직인다면 한정된 예산을 어느 곳에 얼마나 투입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는 평범한 이치를 보여준다.
이렇게 해도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23세나 25세도 아닌 딱 만 24세에게만 부자인지 취업했는지 따지지 않고 1인당 연간 50만 원어치 상품권을 주는 경기 성남시의 복지정책은 그렇게 비판을 받고도 바뀔 줄 모른다. 상품권이 지급되자마자 할인된 금액으로 현금 교환하자는 글이 올라왔는데도 말이다. 선거로 뽑힌 시장이 무조건 하겠다니 막을 도리가 없지만 퍼주기를 하더라도 최소한의 ‘맞춤형’은 돼야 하지 않겠나. 취업하려는 청년에겐 학원비를, 학생에겐 책값을, 취업한 청년에겐 목돈 마련 적금을 지원하는 게 상식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