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꼼수 부리듯 몇번 실수…사람이 둘 수 없는 승부수로 끝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0일 03시 00분


[이세돌 vs 알파고 ‘세기의 대국’]
186수만의 불계승… 알파고 비결은

착잡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패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둘의 대결을 
지켜본 프로기사들은 “알파고는 예상보다 훨씬 강했고, 이 9단은 심리적 부담 때문인지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착잡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패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둘의 대결을 지켜본 프로기사들은 “알파고는 예상보다 훨씬 강했고, 이 9단은 심리적 부담 때문인지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종반 무렵 모니터에 비친 이세돌 9단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감돌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라는 자책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의문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윽고 이 9단은 그동안 따낸 백돌을 반상 위에 내려놓으며 패배를 인정했다.

인공지능이 인간 바둑 최고수를 이기는 순간이었다. 바둑계의 치욕일지, 새로운 전기가 될지 모르지만 바둑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이날 대국을 지켜본 프로기사들은 대체적으로 “알파고는 예상보다 훨씬 강했고, 낯선 대국 환경에 임한 이세돌 9단은 지나치게 긴장해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분위기다.

9일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대결하게 된 이 9단은 상당한 심리적 부담감 속에서 싸웠다. 기력도 베일에 가려져 있고, 얼굴도 보이지 않으며, 중요 대국을 앞두고 긴장하지도 않는 상대였다. 이 9단이 초등학교 4학년 딸인 혜림 양의 손을 잡고 대국장에 들어간 것도 자신감을 얻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 프로도 놀란 실력, 프로가 하지 않는 실수

돌을 가릴 때 선택권을 갖게 된 이 9단은 흑을 선택했다. 덤이 한국 룰보다 1집 많은 7집 반인데도 흑을 택한 것으로 봐 미지의 대국자를 상대로 주도권을 잡겠다는 구상을 미리 해온 듯했다.

알파고는 처음엔 실망스러운 모습부터 보여줬다. 백 10, 16 등 요즘 프로기사들이 두지 않는 수법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 10월 판후이 2단의 대결 때보다 나아진 게 없다는 실망이 쏟아졌다.

하지만 곧 대반전이 일어났다. 전투의 대가인 이 9단의 도발을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강수를 터뜨리며 이 9단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상변 전투에서 알파고는 확실한 우세를 확보했다. 초반이 약하다던 알파고가 되레 초반부터 앞서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파고에도 빈틈은 있었다. 좌하귀에서 뭔가 변화를 꾀하는 듯하다가 88, 90으로 물러선 것이 큰 실착. 프로들에겐 있을 수 없는 진행이었다. 김성룡 9단은 “팽팽하던 긴장의 끈이 갑자기 탁 풀린 느낌”이라며 “어느 대목에선 일류 프로처럼 뒀다가 어느 장면에선 아마추어처럼 두는 등 종잡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좌하귀 실착으로 형세는 흑이 유리해졌다. 대국 초반 평소보다 훨씬 굳어 있던 이 9단의 얼굴도 한껏 풀렸다.

이날 승부의 백미는 불리하다고 판단한 알파고가 백 102로 우변을 침입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 이 9단은 물론이고 프로기사들도 예상치 못했던 ‘깜짝’ 승부수였다. 이 9단은 오랜 궁리 끝에 바꿔치기로 응수했지만 알파고는 불리한 형세를 만회할 수 있었다. TV 해설을 하던 박정상 9단은 “이제 흑(이 9단)이 분발해야 하는 형세”라고 했다.

알파고의 승부수 성공에 당황한 이 9단이 마침내 패착을 저질렀다. 흑 123으로 붙이고 127로 둔 수. 이 수 때문에 백이 귀의 실리를 차지하면서 실리의 균형이 무너졌다. 알파고의 잦은 실수에 방심하던 이 9단이 제풀에 넘어진 셈이다. 이후로는 승부처가 없었다.

○ 이세돌 9단의 반격 열쇠는?

알파고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으나 잔실수도 잦았다. 프로기사들은 이 9단이 1국처럼 초반부터 전투를 벌이지 말고 포석이 약한 알파고를 상대로 초반에 최대한 앞서 나간 뒤 알파고의 잔실수를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았다.

김찬우 6단은 “실력이 베일에 가려있던 알파고를 상대하는 게 생소해서 그렇지 1국에서 겪어봤으니 그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했을 것으로 본다”며 “2국에선 자신의 평소 기풍보다는 알파고의 특성에 맞는 전략을 구사한다면 승산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승준 9단 역시 “2국이 이번 매치의 분수령이 될 듯하다. 이 9단이 부담을 안고 임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패한다면 부담이 더욱 커져 100만 달러 상금을 가져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9단이 2국을 이기면 기세를 타 나머지 대국을 전승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이세돌#알파고#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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