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10일 TK(대구경북) 지역 방문을 두고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가 반발하고 있다. 이른바 ‘진박(진짜 친박)’ 후보를 간접으로 지원하기 위한 행보라고 본 것이다. 청와대는 “창조경제 행보일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폭발 직전인 새누리당 내 공천 갈등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창조경제 행보” vs “진박 지원”
박 대통령이 이날 방문한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는 2014년 9월 전국 17개 센터 가운데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출범식에 직접 참석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국제섬유박람회와 ‘스포츠 문화·산업 비전 보고대회’에 참석한 것도 창조경제·문화융성 기조와 관련된 행보라며 총선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또 청와대는 “도청 개소식에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4월 4일 충남도청 신청사 개청식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총선 등 정치적 논란이 예상되는 시점에 박 대통령이 대구행을 강행한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대구 지역 행사에는 정치인들이 참석하지 않았고, 정치 관련 언급도 일절 없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정치적 고향’에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만으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가 있다. 공교롭게도 이날 박 대통령이 찾은 지역들은 진박으로 분류되는 후보들이 공천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위치한 동갑 지역구에는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도전장을 냈다. 친박계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유승민 의원 지역구(동을)와도 가깝다. 국제섬유박람회는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한 북갑 지역구에서 열렸다. ‘스포츠 문화·산업 비전 보고대회’가 진행된 대구육상진흥센터는 새누리당 김문수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맞대결하고 있는 수성갑에 있다.
비박계 의원들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 의원은 “설 연휴 때부터 ‘박 대통령이 올 수 있다’는 말이 돌았는데 정말 대구를 찾았다”며 “청와대에서 대구에서 들를 지역구를 선정할 때 총선을 감안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역 정가에 밝은 한 관계자는 “대구에서는 박 대통령이 지역구를 방문한 것을 ‘이 지역구에 진박 후보가 단수 추천될 수 있으니 이해해 달라’는 메시지로 읽은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 TK 정치인 총출동… 정종섭만 악수
경북도청 신청사 개청식에는 TK 지역 새누리당 의원과 예비후보들이 대거 참석했다. 대구지역 의원 12명 중에는 불출마를 선언한 이한구 이종진 의원을 제외한 10명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진 유승민 의원도 눈에 띄었다. 한 의원은 “공천을 앞둔 민감한 때여서 대통령과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하고 싶은 심정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40분 동안 진행된 개청식이 끝난 뒤 무대 앞에 첫 줄에 앉은 인사들과 악수를 하고 떠났다. 정종섭 후보는 전 행자부 장관 자격으로 의원·예비후보 중 유일하게 첫 줄에 앉아 있다가 박 대통령과 악수를 해 ‘진박 인증’을 한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다. 현역 의원들은 두 번째, 세 번째 줄에 좌석이 배정돼 박 대통령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예비후보들은 행사장에 자리가 별도로 마련되지 않아 주변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한 예비후보는 “멀리서 대통령 얼굴 본 게 전부여서 아쉽다”고 토로했다.
지역 정가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진박 후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진박 후보들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보는 분석이 많지만 박 대통령이 예전에 당 대표로 선거를 지휘하던 때와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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