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놀란 한국, 기술격차 좁힐 ‘두뇌’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5일 03시 00분


[인공지능의 진화]
정부-대기업 따라잡기 나섰지만… 박사급 연구인력 年 20∼30명뿐
지원 끊자 인재들 대거 이탈한 탓

미래창조과학부는 인공지능(AI) 연구의 구심점 역할을 할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다음 달 설립할 계획이다. 하지만 고민이 많다. 국내 대학 박사와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한국으로 돌아온 AI 분야의 연구자가 한 해 20∼30명에 불과해 적절한 인재를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AI 분야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연구소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최근 ‘알파고 쇼크’로 국내에서도 AI 분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지만 관련 인력을 찾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10년 넘게 이른바 ‘AI 인재 암흑기’가 지속된 탓이다.

한국형 AI를 개발하는 솔트룩스의 이경일 대표는 “세계 최고의 인재가 모이는 미국은 비교조차 할 수 없고 중국에서도 AI 분야에서 박사급 인력이 한 해에만 2000∼3000명씩 배출되는 것을 보면 한국이 AI 분야의 인재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AI 인재 사라진 한국

구글의 AI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한국 사회를 강타한 첫 주말인 13일.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국내 정보기술(IT) 업계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연구개발(R&D)센터를 찾아 AI 분야의 연구 현황을 브리핑 받았다. 이 자리에서 연구원들은 국내에서 AI 분야의 인력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했다.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AI 연구자는 각각 100명 수준으로 구글의 자회사인 딥마인드(150명)보다도 적다”고 말했다.

AI는 신성장동력의 핵심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한때 AI 분야 인재가 상당수 배출됐다. 실제 1980년대 중반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미국에서 AI를 연구한 전공자들이 귀국하기 시작했다. 서울대와 KAIST에서도 AI 분야의 박사 인력이 배출됐다. 당시 김진형 KAIST 교수를 중심으로 ‘인공지능연구회’가 창립되자 400명에 달하는 인재가 몰리기도 했다.


▼ “단기수익 못내도 구글처럼 지속 투자를” ▼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는 1990년부터 7년간 900억 원을 투자해 한국어를 알아듣는 컴퓨터를 만드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시적인 연구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정부 지원이 끊어졌다. 연구도 멈췄다. 결국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AI 분야의 인재들은 전공을 바꿨고, 새로운 연구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른바 한국의 ‘AI 암흑기’였던 셈이다.

당시 AI 분야에서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는 관련 투자가 꾸준히 이뤄졌다. 그 덕분에 2006년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AI 분야의 이정표가 되는 ‘딥러닝’(AI가 외부 데이터를 분석해 스스로 의미를 찾는 학습 과정) 기술을 내놓을 수 있었다. 딥러닝은 구글 알파고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다.

○ 단기 이익에 집착하는 한국 기업


인재 부족 현상은 AI 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미래형 산업은 만성적으로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이는 단기 이익을 좇는 국내 대기업들의 특징과도 연관이 깊다. 구글은 직원 50여 명의 딥마인드를 약 6800억 원에 인수했다. 또 딥마인드에 매년 1000억 원을 투자해 바둑처럼 당장은 돈이 안 되는 분야를 연구할 수 있게 했다. IT 업체 관계자는 “국내의 대표적인 IT 기업인 삼성전자나 네이버 등과 같은 기업에 이런 투자 문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의 AI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에 한참 뒤진다. 아시아 국가로 한정해도 일본에 밀리고 중국에 쫓기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PT)에 따르면 한국의 AI 소프트웨어 기술의 상대수준(미국 100 기준)은 75.0으로 일본(89.3)에 뒤처지고 중국(71.9)과 비슷한 상황이다.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인공지능 로봇인 페퍼를 상용화해 이미 백화점 등에 배치했다. 일본 국립정보학연구소는 도쿄(東京)대 합격을 목표로 ‘도(東)로봇군’이란 AI를 개발 중이다. 도로봇군은 지난해 모의시험에서 900점 만점에 386점을 받았다. 연구소는 2021년까지 도쿄대 입시를 통과할 수 있게끔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도요타는 1월 10억 달러(약 1조1875억 원)를 투자해 AI 연구소를 설립했다.

후발 주자인 중국의 최대 포털 업체인 바이두는 2014년 5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3억 달러를 투자해 AI를 연구하는 딥러닝연구소를 설립했다. 현재 바이두의 자율주행차는 추월과 끼어들기가 가능해 이미 한국 자동차업계의 기술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제라도 정부와 대기업이 미래지향적 산업에 적극적이고 꾸준한 투자에 나서면 관련 인재가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신무경 fighter@donga.com·정세진 기자
#ai#인공지능#딥러닝#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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