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에 ‘컷오프(공천 배제) 피바람’이 몰아친 15일 밤. 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전화해 “결국 일을 내셨더라. ‘이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논란이 불 보듯 뻔한데도 비박(비박근혜)계 인사들을 쳐내고 ‘진박(진짜 친박) 후보’들에 대한 사실상의 전략 공천을 감행한 ‘독주’에 친박계도 놀랐다는 얘기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6일 공관위 출범 첫날부터 현역 의원들을 향해 ‘물갈이’하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양반집 도련님’ ‘월급쟁이’ ‘저성과자’ ‘비인기자’ 등을 입에 올리며 현역 의원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19대 국회에 대한 실망한 일부 국민은 이 위원장의 거침없는 발언에 시원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친박계의 지지를 등에 업고 취임했지만 ‘깐깐한 원칙주의자’로 불렸던 그의 칼자루가 어디를 향할지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친이(친이명박)계나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표적 삼아 ‘족집게로 집어내듯’ 했다. ‘3·15 공천 학살’ 때 컷오프된 현역 의원 8명 가운데 비박계가 7명이나 됐다. 정치권에서는 결국 친박계의 시나리오대로 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느닷없이 ‘당 정체성’이라는 애매한 기준까지 들고 나왔다. 이 위원장이 ‘진박 마케팅’에도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한 진박 후보들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친박 대리인’ 역할을 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 위원장은 당헌 8조(‘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에 근거한 ‘책임 공천’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無)원칙 공천 학살’ 논란은 이 위원장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는 그간 공천 기준을 물어도 “알 필요가 없다” “한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결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피해가며 특유의 퉁명스러운 반응으로 일관했다. 이러다 보니 ‘대구발 물갈이’는 ‘진박 후보 내리꽂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비쳤다.
그런데도 이 위원장은 컷오프 학살 논란에 기름을 붓고 있다. 16일 김무성 대표의 문제 제기에 “웃기는 소리” “바보 같은 소리”라며 들은 척도 안 했다. 공천 탈락한 주호영 의원(3선·대구 수성을)에 대해 “실컷 해 먹었잖아”라며 염장을 질렀다. ‘이한구표 공천’은 집권 여당의 공천 방향이 무엇인지, 어떤 인물을 전략적으로 내세워 총선에서 국민 선택을 받겠다는 건지에 대한 큰 그림 없이 계파싸움 속에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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