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는 ‘알파고 충격’을 통해 인공지능(AI) 업계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컴퓨터공학과 뇌신경과학 등 학문적 경계를 넘나든 ‘융합형 인재’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허사비스 대표 같은 인재가 나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선뜻 ‘그렇다’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하고 있다. 국내 학계는 여전히 전공 간 칸막이가 견고해 학문 간 융합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에서다.
동아일보는 관련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허사비스 대표가 박사 학위 과정이나 박사후연구원(포스트닥터) 생활을 하는 동안 쓴 대표적 논문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허사비스 대표의 AI 프로그래밍 기저에 있는 이질적 학문의 융합을 통한 기술 개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애플의 성공 신화를 쓴 스티브 잡스에 비견되면서 ‘제2의 스티브 잡스’로도 불리는 배경이다.
허사비스 대표는 학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박사 학위는 2009년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인지신경과학 전공으로 받았다. 그가 알파고 이전에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은 것도 이때다. 그가 쓴 뇌 관련 학술 논문들 덕분이다. △해마성 기억상실 환자들은 새로운 경험을 그려 내지 못한다 △단편적 기억 생성의 해체 △상상력을 이용한 단편적 기억의 신경 기저 이해(이상 2007년) △두뇌의 생성 시스템 △인간 해마 뉴런의 총체적 움직임 해석(이상 2009년) 등이 대표적이다.
허사비스 대표는 해마 손상이 경험을 기억하는 데 미치는 영향, 장소 이동 기억이 뇌에 저장되는 형태, 기억할 때 뇌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등을 실험했다. 2009년 ‘현대생물학’지에 발표한 ‘인간 해마 뉴런의 총체적 움직임 해석’에서 그는 “사람의 장소 이동 기억은 뇌에 특정한 형태로 저장되고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이를 분석하면 과거의 기억을 읽어 낼 수 있다”고 밝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모두 인간의 뇌와 기억 저장 과정에 관한 연구다. 연구 성과들만 보면 뇌신경학자 또는 의학자의 학문적 토대를 허사비스 대표는 알고리즘화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0년 딥마인드 테크놀로지를 설립해 알파고 개발의 초석을 다질 때도 뇌에 대한 심층적 연구를 AI에 접목했다. 그가 밝혔듯이 알파고가 단순히 계산만 빠른 ‘슈퍼컴퓨터 집합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은 허사비스 대표의 융합된 학문적 토대 덕분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AI 투자를 갑자기 늘리더라도 관련 인재가 없으면 헛수고다. 국내에서도 융합대학원 설립이 늘어나는 등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시도는 있다. 그러나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 박사과정 학생인 A 씨는 “연구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코딩이나 통계를 배우기 위해 대부분 컴퓨터 또는 통계학 관련 수업을 듣지만 전공은 학부 때부터 지금까지 사회과학 분야다”며 “박사 전공을 이공계 학과로 바꾸려고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도교수로부터 ‘교수가 되는 데 지장이 많을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마음을 접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허사비스를 키우려면 결국 학과 간 벽을 허물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인공지능이나 자율 주행차 개발에 과학적 지식뿐 아니라 인권, 법률 등을 고려할 수 있는 인문사회적 소양이 필요한 것처럼 시대가 융합형 인재를 원하고 있다”며 “경직된 교육행정 시스템 대신 새로운 학문을 학교 스스로 디자인해 만들고 때로는 없앨 수 있는 자율적인 제도가 뒷받침돼야만 진정한 융합형 인재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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