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욕심 많은 노인네처럼 만들고…. 사람을 갖다가 인격적으로 그딴 식으로 대접하는 그런 정당에 가서 일을 해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자신이 만든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이 당 중앙위원회에서 정면 거부당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21일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그는 이날 당무를 거부했다. 비대위 관계자들과 접촉했지만 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는 듯했다.
○ “정치, 정당 이야기 안 해”
오전 6시 45분 정장선 총선기획단장과 김성수 대변인이 서울 종로구 김 대표 자택을 찾았다. 전날 열린 긴급 비대위에서 ‘비례대표 12번 배치’ 얘기가 오간 데 격분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한 시간가량 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빈손으로 되돌아갔다.
김 대표는 오전 8시 50분경 캐주얼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그는 “더 이상 정치, 정당에 대해 이야기 안 할 테니 내게 묻지 말라”고 했다. 다만 김 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 ○ “출구전략 없다”
오전 9시 45분경 김 대표는 종로구 개인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고민 안 하고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했던 그의 목소리는 서서히 높아졌다. 김 대표는 “내가 (비례대표 2번을) 하고 싶어서 했다고 생각하느냐”며 “내가 응급 치료하는 의사 같은 사람인데, 환자(더민주당)가 병이 낫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인격적으로 사람을 모독하면 죽어도 못 참는다”며 “(갈등 상황에 대한) 출구전략은 없다”고 했다. 5년 이상 금연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이 자리에서 줄담배를 피웠다. ○ “(비례) 14번? 상의한 적 없다”
오전 10시 20분경, 그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외부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병원에 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각, 비대위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 호텔에서 회의를 갖고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의 1번을 유지하되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을 제외하고 김 대표를 14번으로 하는 1차 중재안을 마련한 뒤 김 대표에게 연락했다.
오후 4시 50분경 시내 한 호텔에서 비대위의 ‘특사’로 파견된 이종걸 원내대표를 만났다. 그는 “(비대위의 비례대표 14번 결정은) 나하고 상의한 적도 없으니 물어보지 말라”고 했다. 비대위의 1차 조정안에 김 대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수용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의 측근은 “비대위의 ‘비례대표 14번’ 결정이 (회동 전) 언론에 보도된 것을 뒤늦게 알고 격노했다”고 전했다.
○ “……”
회동이 사실상 결렬된 뒤 그는 자택으로 직행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국회에서 비례대표 순번을 정하기 위한 당 중앙위원회가 열리고 있던 오후 9시경, 김 대표의 수행비서는 “와인 한두 잔 마시고 주무시고 있다”고 했다.
반면 김 대변인은 오후 10시 40분경 브리핑에서 “전화로 (중앙위 상황을) 보고했고, 김 대표는 ‘알았다’고만 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알았다’는 의미는 관심 없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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