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길에 내몰린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23일 결국 탈당의 길을 택했다. 이날 무소속 출마 등록(24, 25일)을 위한 시한인 밤 12시를 1시간여 앞두고 내린 선택이었다. 탈당계는 대리인을 통해 제출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10시 46분에 시작한 탈당 기자회견에서 “2011년 전당대회 출마선언, 작년 4월 국회 대표연설을 몇 번 읽어봐도 당 정강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없었다”며 “결국 정체성 시비는 저와 개혁의 뜻을 함께한 죄밖에 없는 의원들을 쫓아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한때 불출마 관측도 나왔지만 그는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로써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배신의 정치’ 심판론에 대한 주민들의 판단을 직접 구하게 됐다. ○ “두려운 건 오직 국민뿐”
유 전 원내대표는 탈당 회견에서 “공천을 주도한 그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애당초 없었고 진박, 비박이라는 편 가르기만 있었을 뿐”이라며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계를 겨냥했다. 그는 “국민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헌법을 언급했다. 그는 “우리 헌법 1조 2항은 국민 권력을 담고 있다”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 없다. 헌법에 의지한 채 오랜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고 한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원내대표 사퇴 연설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 1항을 언급한 데 이어 이번엔 헌법 1조 2항을 언급한 것이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다.
앞서 칩거해 오던 유 전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3시경 예고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그의 어머니이자 고 유수호 전 의원의 부인인 강옥성 여사(87) 자택 앞이었다. 16일 새벽 지역구에 있는 대구 동구 용계동 거처를 빠져나온 지 8일 만이었다.
50여 분 만에 집을 나선 유 전 원내대표는 기자들의 “마음을 정했느냐”는 질문에 “나중에 얘기하겠다”면서도 “오늘 중으로 말씀드리겠다”고만 말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이어 바로 지역구 거처로 옮겨갔다. 그는 먼저 아파트 경비원에게 다가가 “죄송하다. 그동안 미안했다”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자신을 둘러싼 논란으로 일주일 넘게 일대가 소란했던 점을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기자들에게도 “수고 많았다”고 말을 건넨 뒤 거처로 들어갔다.
○ 유승민 사무소에 새누리당 색을 지우다
유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 사무실은 하루 종일 뒤숭숭한 모습이었다. 지지자들은 오후 5시 반 김무성 대표의 기자회견을 TV로 지켜보다가 ‘무(無)공천’ 가능성이 언급되자 “당이 어떻게…”라며 탄식을 터뜨렸다. 한 여성 지지자가 흐느껴 울자 다른 지지자들이 “유승민”을 연호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대구시당은 이날 유 전 원내대표가 탈당계를 제출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밤늦도록 사무실을 열어뒀다.
이날 오후 9시 40분경 유 전 원내대표 측이 지역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탈당 선언이 임박했다는 거였다. 사무실 관계자들은 회견에 앞서 ‘대구의 힘! 대구의 미래!’가 적힌 배경막을 설치했다. 새누리당 상징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색 바탕으로, 당명도 담기지 않았다. 공천 배제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 둔 것이었다.
○ 대구 선거 판세 요동칠 듯
유 전 원내대표의 무소속 출마로 대구지역 선거 판세는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당으로 돌아와서 보수개혁의 꿈을 꼭 이루겠다”고 했다. 세력화를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그와 경쟁했던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공관위는 무공천은 있을 수 없다고 했으니까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탈당하면 (내가) 공천을 받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지역민 박기달 씨(55)는 “공천을 안 줄 것 같으면 일찌감치 ‘컷’하든지 당이 비겁하다”며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유 전 원내대표가) 밉다고 이러면 되느냐”고 말했다. 윤모 씨(44)는 “당을 떠나서 유 전 원내대표가 지금 후보 중에는 제일 낫다”며 “(유 전 원내대표가) 무소속으로 당선되면 새누리당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이한구 공관위원장이 계속 ‘당 정체성’을 문제 삼았는데도 그가 침묵과 잠행만 고집하면서 ‘줄탈당’이라는 파국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때 측근으로 분류됐던 김상훈 의원(대구 서)은 유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유승민계로 분류돼 희생당한 분들이 너무 많은데 이런 파국적인 상황까지 오지 않도록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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