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주말 총선 지원 첫 일정으로 광주·전남을 찾아 “호남인의 소망이 뭔지 잘 안다. 완벽하게 대변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정치권에서는 ‘호남인의 소망’을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계승할 ‘호남 대통령론’으로 이해한다. 김 대표도 지난달 이른바 ‘광주 선언’에서 제2, 제3의 DJ로 자라날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호남은 DJ 이후 여야 어느 쪽이든 대통령 후보를 갖지 못한 데 내심 불만이 커지고 있다. 김 대표의 발언은 호남인의 심리적 박탈감에 응답 또는 영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 대표는 “나도 광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를 다녔다. 뿌리가 호남”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 인근에서 태어나 서울의 덕수초등학교에 입학했고 6·25전쟁 때 광주로 피란해 서석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서중을 1년 반 다녔다. 이후 서울에서 중앙중고를 졸업했다. 김 대표가 전북 순창이 고향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광주에서 초·중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처음 듣는 사람이 많다. 과거 인터뷰에서 호남 연고(緣故)를 부인했던 김 대표가 평소 안 하던 이야기를 갑자기 꺼낸 것인데 ‘호남 구애’가 급해도 정도가 지나치다. DJ처럼 호남을 발판으로 ‘킹’을 해보려는 것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 대표는 국민의당을 겨냥해 “광주·전남 유권자들을 희롱하고 있다”며 “왜 호남 정치를 분열하는 데 앞장서야 하느냐”고 말했다. 더민주당에서 분당한 국민의당은 ‘호남 자민련’으로 전락할 우려가 없지 않다. 그렇지만 더민주당이 그동안 호남에서의 독점적 지지가 당연하다는 듯 국민의당을 향해 분열 운운한 것도 오만하게 들린다.
호남 지역주의에 관해서는 국민의당은 입을 다물어야 할 처지다. 천정배 공동대표는 김 대표가 참배하고 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어제 “‘민족·광주·민주’ 등 세 가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정권 교체는 역사적으로 소외받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호남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리적 비약으로 가득한 이런 주장은 호남 지역주의에 기대려는 이 당의 허약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양김(兩金) 시대의 종언 이후 정치권에 남겨진 숙제는 지역주의의 극복이다. 인구수로 볼 때 지역주의에 기대서는 호남 정당이 다수당이 되거나 집권의 꿈을 꾸기 어렵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호남을 지역주의의 틀에 가둘수록 사실상 호남을 배신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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