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서 만난 김일수 씨(69)는 4·13총선 얘기를 꺼내자 “투표할 생각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지역은 경기 북부의 최대 접전지로 표심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고양시의 4개 선거구 가운데 2곳(고양갑·정)에선 2008년 18대 총선 이후 여당과 야당 후보가 1승 1패로 팽팽하다. 이번이 세 번째 승부다. 다만 두 지역 모두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가 된 점이 변수다. ○ 170표 차로 승부 갈린 고양갑… 이번엔?
화정역 앞에서 10년 넘게 과일 장사를 했다는 김모 씨(55)는 이날 새누리당 손범규,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선거사무소 현수막을 바라보며 “이번 총선도 지난번(선거)처럼 팽팽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전국에서 가장 적은 170표 차로 심 후보가 당선됐던 4년 전 총선 결과를 떠올린 것이다. 조선일보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손 후보(32.3%)와 심 후보(37.2%)는 오차 범위 안에서 경쟁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준 후보는 9%를 기록했다.
이 지역에서 20년 동안 거주했다는 김모 씨(71)는 “정의당이 작아서 힘을 못 쓰니까 힘 있는 여당을 밀어줘야 지역 발전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공천 갈등을 두고는 “차라리 국회의원 안 뽑았으면 좋겠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오전 화정역 광장에서 지역 주민에게 인사를 하던 손 후보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당내 계파끼리) 싸우지 말라는 얘기를 제일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총선 때는 당에서 각종 특별위원회와 원내부대표를 맡아 선거운동을 할 시간이 없었다”며 “이번에는 예비후보 기간 120일 동안 제대로 지역에 밀착하면서 왜 국회에 실망했는지 교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원당역에서 출근길 인사를 하던 심 후보는 젊은 주민들과 ‘셀카’ 찍기에 한창이었다. 한 화물차 운전사는 심 후보에게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심 후보도 “거리에서 만나는 지역 유권자들은 ‘심상정이 일 하나는 잘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선 분열을 걱정하고 있다. 권용준 씨(20)는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겨 줘서는 안 되니 둘 중 유리한 후보로 단일화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심 후보에게 후보직을 양보했던 박 후보는 “심 후보가 용퇴하지 않으면 무조건 완주할 것”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선거 슬로건도 정의당과 더민주당이 선수를 바꿔야 한다는 뜻에서 ‘임무 교대’를 내세웠다. 이에 대해 심 후보는 “더민주당이 공동 승리의 길을 차 버린 것은 유감이지만 유권자들이 집단지성으로 나를 선택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 여여(女女) 대결 고양정
주엽동에 11년 살았다는 조운제 씨(81)는 이날 “더민주당은 너무 거친 것 같다”며 “4선 국회의원 출신인 새누리당 김영선 후보가 경륜도 있고 더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자영업자 이현주 씨(59)는 “더민주당 김현미 후보가 4년간 지역 활동을 탄탄히 했고 김영선 후보는 방심하는 것 같다”며 “서민 경제와 중산층 복원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했다. 지역 주민의 여야 후보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셈이다.
고양정에서는 여야 주류 계파의 전현직 여성 의원이 세 번째 대결을 펼친다. 2008년 18대 총선 때 친박계인 새누리당 김영선 후보가,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친문(친문재인)계인 더민주당 김현미 후보가 당선됐다. 경인일보가 전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 현역인 김현미 후보(31.1%)는 김영선 후보(21.5%)를 9.6%포인트 차로 앞서고 있다. 국민의당 길종성 후보는 3.8%. 다만 일산경찰서 인근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김영화 씨(48)는 “두 후보 모두 인지도 있는 여성 후보지만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4년 전 총선에 비해 분위기가 침체돼 있다는 목소리도 많다. 한 아파트 상가에서 5년째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근상 씨(50)는 “요즘 손님들은 선거 얘기를 거의 안 한다”고 전했다. 4개월 전부터 이 지역에서 채소 가게를 시작한 원창수 씨(62)는 “후보들이 선거운동을 하는 것도 별로 못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여야 모두 공천 갈등에 휩싸이면서 총선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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