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들기 때문이다(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詩) 구절을 인용해 자본시장법상 ‘투자자 보호’ 취지를 설명한 판결문이 법조계에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란 시로 유명한 시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김동아)는 해외 선물투자로 원금을 보장하겠다며 3070여명에게서 투자금 1380여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이숨투자자문의 실질 대표 송모 씨(40)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한 판결문에는 프로스트의 시가 등장한다. 판결문에 사실관계나 법리 외에 시적인 문구가 들어가는 것은 매우 드물다.
106장짜리 판결문에서는 이숨투자자문이 투자자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혼합관리한 점이 자본시장법 위반이라고 지적하면서 프로스트의 시 ‘담을 고치며(Mending wall)’의 구절을 인용했다. ‘담을 고치며’는 자연과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인간의 문명이 이뤄진다는 내용의 시다. 두 차례 나오는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들기 때문이다’는 구절이 특히 유명한데, 자본시장법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여러 의무를 ‘좋은 담’에 비유해 설명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본시장법은 투자일임 재산을 각각의 투자자별로 운용하지 않고 여러 투자자의 자산을 집합해 운용하는 행위를 불건전 영업행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며 “자본시장법은 엄격한 규칙을 둬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2006년에는 대전고법 민사3부 박철 부장판사의 판결문이 시적인 문구로 큰 화제가 됐다. 법 절차를 몰라 딸 명의로 임대주택을 받아 살다가 소송을 당해 임대주택에서 쫓겨날 뻔한 70대 노인을 구제하면서 쓴 판결문에는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는 찬바람이 일고/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차가운 머리만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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