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의 대가로 잃어버린 인간성, 웃으며 꼬집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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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극립극단 ‘국물 있사옵니다’
이근삼 원작 살린 블랙코미디 ‘어떻게 살 것인가’ 철학적 질문

연극 ‘국물 있사옵니다’에서 주인공 상범(박완규)은 자신을 협박하는 ‘조폭 탱크’를 총으로 쏴 제거한다. 국립극단 제공
연극 ‘국물 있사옵니다’에서 주인공 상범(박완규)은 자신을 협박하는 ‘조폭 탱크’를 총으로 쏴 제거한다. 국립극단 제공
러닝타임 내내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무거운 주제 의식도, 거창한 시대정신도 없다. 배우들은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연기하지만, 이 역시 계산된 움직임이다. 이를 통해 작품은 블랙코미디 형식의 희극미를 살려 낸다. 국립극단의 신작 ‘국물 있사옵니다’ 이야기다.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의미의 ‘국물도 없다’는 말을 뒤집어 본 ‘국물 있사옵니다’는 1966년 초연된 이근삼 작가의 대표작이다. 당시 ‘상식’과 ‘평범’에서 한 글자씩 이름을 딴 주인공 김상범을 통해 1960년대 후반 산업화 시대의 세태와 모순을 통렬하게 풍자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제철회사 임시직이던 상범이 ‘착하게 살면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깨닫고 출세를 위해 편법과 술수로 점철된 ‘새로운 상식’을 추구하며 경리과장을 거치고, 사장의 죽은 아들의 아내와 결혼한 뒤 제철회사 이사 자리까지 오르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렸다.

50년의 세월이 지나서일까. 서충식 연출은 원작 희곡을 거의 그대로 살렸지만 초연 당시 쏟아진 평가처럼 산업화 시대의 모순을 시원하게 고발한다는 인상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치열한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다소 과장된 움직임을 러닝타임 내내 보이지만, 이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극중 상범의 연기는 물론이고 관객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해설자의 역할까지 도맡아 하는 배우 박완규는 극의 중심을 잡고 관객을 리드한다. ‘옛 상식’을 추구하는 착한 상범부터 성공을 위해 협박을 일삼는 ‘새 상식’ 상범까지…. 박완규는 한 캐릭터의 가치관 변화에 따른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제철회사 이사까지 올라가는 ‘국물’을 얻었지만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허탈함을 맛깔나게 잘 살렸다. 다방 레지 역의 황선화와 조폭 탱크 역을 맡은 김희창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캐릭터 자체가 강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적절한 오버 연기를 통해 극의 재미를 배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무대도 인상적이다. 곳곳에 배치된 계단 무대는 출세를 인생의 목표로 삼은 상범의 인생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또 계단을 통한 배우들의 다양한 동선은 무대 공간을 확장시키는 효과를 줬다. 24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전석 3만 원. 1644-2003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국물 있사옵니다#이근삼#블랙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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