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어 무한 리필 가게들이 곳곳에 생겨나 성업 중이다. 지방 함량이 낮은 대신 단백질과 오메가3 등이 풍부해 다이어트와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연어. 그런데 이렇게 비싼 연어를 맘껏 퍼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 무한 리필로 제공되는 연어가 슈퍼푸드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고갈비(고등어 구이)에 소주나 하러 가자.” 모처럼의 회식 제안에 예전 같았으면 반색했을 후배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선배, 요즘 트렌드는 살도 안 찌면서 건강에도 좋은 연어예요.” 최근 들어 길거리에 ‘연어 무한 리필’ 간판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것도 가게마다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는 모습이다. ‘연어 음식점은 잘하면 대박, 못해도 중박’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고급 일식집에서 몇 점 정도밖에 나오지 않던 귀한 생선이었는데 무한 리필까지 되는 걸 보니 ‘연어의 위상도 많이 낮아졌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연어 무한 리필 집에서는 가게마다 ‘다이어트 식품 연어, 슈퍼푸드로 선정’이라는 홍보문을 내걸고 있었다. 〈먹거리 X파일〉 진행자로서 작은 먹거리 하나도 그냥 넘기지 못하는 필자는 고급 연어를 어떻게 무한 리필로 제공할 수 있는지, 저렇게 퍼주고 남기나 하는 건지, 연어가 진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건지 살펴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고갈비보다 연어를 더 좋아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절대로!
연어 무한 리필, 남는 장사인가?
사실 고급 생선인 연어를 무제한으로 리필해줄 수 있는 비결이 가장 궁금했다. 솔직히 연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서 연어를 찬양하던 후배도 이렇게 물었다. “근데요, 선배. 1인당 1만5천원도 안 되는 가격에 연어를 무제한으로 준다는 게 수상(?)하단 말이에요.” 합당한 의심이다. 시장 조사를 해보니, 최근 1년 새 서울 시내에 생긴 연어 무한 리필 전문점이 무려 3백여 개나 됐다. 대단한 기세다. 가격은 1인당 1만3천원에서 1만4천9백원 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연어 무한 리필은 물론이고 튀김, 전, 콘치즈 등 곁들이 음식도 많게는 6종류나 나온다. 이러한 식당 가운데는 과거 호프집을 운영하다가 경기 침체로 업종을 변경한 곳도 있었다. 호프집 인테리어 그대로 간판만 바꿔 달아 연어 무한 리필 집을 하는데도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그 사장님은 경쟁자가 많아진다며 소문내지 말라고귀띔까지 했다. 필자가 물었다. “이렇게 퍼주고 남기나 해요?” 그러자 그 사장님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안 남는 장사가 세상에 어딨어?”
연어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곧장 달려갔다. 시장 아주머니에게 손질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연어 가격을 물어보니 1kg당 1만2천원이라고 했다. 우리가 횟감으로 즐겨 먹는 광어는 1kg당 1만5천5백원 선이었다. 다른 집들을 돌아봐도 시세는 그 수준. 시장 상인들은 몇 해 전만 해도 연어가 이보다 훨씬 비쌌는데, 요즘 수입량이 많아져서 가격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연어 수입량은 최근 5년 사이 3배 이상 급증했다. 시장에 공급되는 연어의 양이 3배 이상 늘어나니 가격도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엔 뼈와 가시를 발라낸 연어 살코기의 가격을 물어보니 1kg당 2만원. 2만원어치 연어를 주문해보니 손바닥보다 큰 연어 한 토막을 내밀었다. 둘이서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었다. 연어 가격이 과거보다 많이 낮아지긴 했어도, 손님 둘이서 3만원을 내면 거기서 매장 운영비 떼고, 직원 월급 떼고, 재료비 떼면 남는 게 있을까 싶었다. 필자 같은 먹성 좋은 남자 둘이 가면 오히려 가게가 손해를 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궁금한 건 바로 알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연어 예찬론을 폈던 여자 후배와 함께 직접 연어 무한 리필 집을 가봤다. 평범한 성인 여성이 연어 무한 리필 집에서 얼마큼 연어를 먹는지 직접 재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후배는 이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평소대로 양껏 먹었다. 주홍 빛깔의 신선한 연어회가 한 접시 가득 나왔다. 둘이서 한 그릇을 비우고 두 그릇, 세 그릇까지 리필을 했다. 세 그릇째 시키자 여자 후배가 더는 못 먹겠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 선배. 배도 부르고 느끼해서 더 이상 못 먹겠어요.” 그날 후배가 먹은 연어회의 양은 총 190g. 갈비 2인분은 혼자서도 거뜬히 먹었던 그가 곁들이 음식 이것저것에 손을 대더니 연어는 생각보다 얼마 못 먹었다. 결국 둘이서 500g도 채 먹지 못했다. 연어 무한 리필 집이 남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 업주는 이렇게 귀띔했다.
“연어를 많이 먹을 거 같지만 느끼해서 얼마 못 먹어요. 우리가 분석한 결과로는 1인당 150~170g 정도 먹더라고요. 덜 먹는 사람, 더 먹는 사람 평균 계산해 보면 딱 그렇게 나와요.”
연어 특유의 느끼한 맛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양이 한정된다는 말이다. 수산시장에서 손질된 연어가 1kg에 2만원 정도인데, 무한 리필 집에서는 둘이서 3만원을 내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400g을 넘지 못하니 남는 장사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연어가 나오기 전에 곁들이 음식으로 전, 튀김, 어묵탕 등 기름기 많고 배부른 음식들이 6종류나 제공되니 애초에 연어를 많이 먹으려야 먹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양식 연어 vs. 자연산
그런데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그 연어 마음껏 먹어도 되나’ 하는 것이었다. 〈먹거리 X파일〉이 취재한 모든 가게에서는 매우 신선한 연어를 제공하고 있었으며, 손님이 먹다 남긴 연어회는 곧장 버리거나 직원들이 덮밥을 해서 먹는 등 재사용도 전혀 없었다. 또한 두 번, 세 번 리필해도 처음과 같은 신선하고 두툼한 연어회가 모든 가게에서 제공됐다. 무한 리필이라고 해서 연어가 아닌 다른 이상한 생선이 제공된다거나, 남이 먹다 남긴 연어가 재사용되거나 하진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진 말이다. 안심하고 마음껏 드셔도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지난 2002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건강에 좋은 10가지 슈퍼푸드를 선정하면서 ‘연어는 지방이 낮고 단백질이 풍부해 다이어트에 좋으며, 연어가 지닌 오메가3가 뇌세포를 감싼 지방층과 상호 작용을 하여 치매와 같이 노화로 인해 생기는 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도했다. 이후 국내에는 이를 인용한 언론 보도가 잇따랐고, 사람들 뇌리 속엔 ‘연어=슈퍼푸드’라고 각인이 된 듯하다. 국내에 수입되는 연어의 90%는 노르웨이 양식산이다. 신선한 주황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가 두껍게 잡혀 있는 두툼하고 큰 연어. 흔히 우리가 먹고 봐왔던 연어를 떠올리면 딱 노르웨이 양식산의 모습과 일치한다. 문제는 이 양식 연어의 지방 함유량이다.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양식 연어는 엄청난 양의 지방을 갖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의 분석 결과 양식 연어는 100g당 무려 19g의 지방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지방이 많다고 알려진 고등어(100g당 11g)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실제로 노르웨이산 연어 200g을 프라이팬에 구워봤더니 기름이 20g이나 배출됐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연어를 먹었다면 차라리 꽃등심을 먹는 게 나았을 뻔한 수치다. 한 연어 수입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양식 연어 살에 있는 흰 줄무늬가 다 지방이에요. 자연산 연어에선 흰 줄무늬를 찾아볼 수 없죠. 양식 연어는 기름진 사료로 키우기 때문에 지방이 많이 끼고, 상대적으로 오메가3 등 좋은 성분은 떨어지죠.”
물론 맛으로만 먹는다면, 노르웨이 양식 연어는 매우 훌륭한 식재료다. 하지만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많은 여성들이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수입업자의 말 중 오메가3 함량이 떨어진다는 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연어가 슈퍼푸드로 선정된 또 다른 이유였기 때문이다. 역시 국립수산과학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양식 연어는 100g당 DHA가 0.38g에 불과했다. 반면 고등어는 100g 1.5g으로 오메가3 함유량이 양식 연어의 5배에 달했다. 양식 연어보다 고등어가 지방도 적고 오메가3 함유량도 월등히 높다면, 슈퍼푸드는 연어가 아니라 고등어여야 맞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양식 연어는 맛으로 따지면 훌륭하고 신선한 식재료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몸에도 좋은 쪽은 연어가 아니라 고등어로 밝혀졌다. 봄비 오는 날, 고갈비나 먹으러 가야겠다.
글 · 김진 채널A 〈먹거리 X파일〉 진행자 | 사진 · REX 제공 | 디자인 · 유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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