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1시 25분. 어둠 속에서 침대가 심하게 흔들렸다. 몸이 어딘가로 내던져지는 느낌이었다. ‘지진이다!’라는 생각에 눈을 떠 일어나려 했지만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었다. 굴러떨어지듯 내려와 침대 옆에 몸을 낮췄다. 스마트폰에선 일본 기상청에서 보낸 경보가 다급하게 울렸다. “지진입니다. 지진입니다.”
14일 밤 구마모토(熊本) 현에서 발생한 지진을 취재하기 위해 급하게 현지 출장을 온 기자는 16일 새벽 구마모토 시의 한 호텔에서 규모 7.3의 강진을 직접 경험했다. 이틀 전 발생한 규모 6.5의 지진은 전진(前震)이었고 이날 새벽에 더욱 강력한 본진(本震)이 발생했다.
평소 배운 대로 우선 ‘탁자 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부터 퍼뜩 들었다. 하지만 방 전체가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흔들렸다. 나는 한 걸음조차 뗄 수가 없었다.
진동이 수십 초 이어지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침대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밖에 없었다. 이러다 정말 어떻게 되는 게 아니냐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가족 얼굴부터 떠올랐다. 진동이 조금 수그러지자 호텔 복도 스피커에서 “침착하게 주차장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불을 켜니 방 안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라디에이터, 의자, 쓰레기통이 넘어졌고 찻잔과 책 등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노트북컴퓨터 등 필수품을 챙겼다. 세탁실 벽에 붙어 있던 건조기가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수도관이 파손돼 복도 천장 곳곳에서 물도 줄줄 떨어졌다.
유니폼 차림의 호텔 직원들이 침착하게 안내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직원들은 당황하는 손님들과 달리 얼굴에 미소까지 지으며 대피 장소로 이동할 것을 권했다. 반복된 훈련에 따른 것이었다. 직원이 투숙객들에게 “건물과 나무로부터 떨어지라”고 얘기하는 순간 다시 땅이 강하게 흔들렸다. 도저히 서 있기 힘들어 손을 땅에 짚으며 주저앉았다.
주차장에서 모포를 덮고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땅은 계속 흔들렸다. 도저히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새벽 4시경 동이 트기 직전에야 안내에 따라 일부는 로비로, 일부는 방으로 이동했다. 직원들은 이후에도 큰 진동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확인했다.
날이 밝은 뒤 본 구마모토 시내는 마치 전쟁터 같았다. 오래된 목조주택들은 지붕이나 벽 일부가 무너진 곳이 수두룩했다. 건물 전체가 휘어지거나 비틀려 손만 대면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빌딩도 적잖았다. 전봇대는 기울어졌고, 고장 난 신호등 대신 경찰들이 사거리마다 수신호로 교통을 통제했다. 도로는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버렸다. 흙이 무너지거나 커다란 바위가 굴러 내려와 도로를 막아선 곳도 많았다.
구마모토 공항은 전면 폐쇄됐고 여진 우려로 신칸센과 고속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구마모토 역 앞에는 해외 관광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진을 치고 있었다. 역 근무자들은 “구마모토를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차를 빌리거나 택시를 타는 것뿐”이라고 안내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기다림에 지친 일부 여행자는 아예 역 앞 길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역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 커플은 “전날 신칸센을 타고 오다 비상 탈출해 택시로 시내까지 들어와야 했다. 지진에 정전까지 겹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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