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련 영감은 ‘아니,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라고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아이가 물은 건 스승님이 죽었느냐가 아니라 지금도 배우느냐는 것이었다.
“그래 지금도 배우고 있지.”(19쪽)
여기서 스승님은 추사 김정희고 할아버지는 그의 제자 허련입니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전성기를 열었던 핵심적인 두 인물이지요. 스승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제자는 ‘압록강 동쪽에서 제일’이란 평판을 듣지만, 제자는 스승에게 지금도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 징표가 구멍 난 벼루입니다. 추사는 먹을 가는 단단한 돌인 벼루가 구멍이 날 정도로, 쉬지 않고 그림과 글을 연습했습니다. 무려 열 개가 넘는 벼루가 그리 되고, 천 개의 붓이 몽당붓이 되었다니 그 열정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역사 속에서 김정희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예술가로서의 김정희는 허련이란 흡족한 제자와 함께여서 행복해 보입니다. 이 책은 예술가 김정희를 매력적으로 그려냅니다. 오랜 귀양 생활도 좋은 그림을 위한 조건인 것처럼 보입니다.
책을 읽을 때 김정희와 허련을 모르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어느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만으로도 매우 재미있게 읽힙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 본래의 모습을 그림이라는 매개를 통해 묵직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과 연계도서 느낌이 강한 표지며 편집이 매우 아쉽습니다. ‘역사’라는 포장지를 모두 벗겨버리고 이야기로만 승부하는 문학으로 다가왔다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을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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