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中 묵인 아래 핵물자 수입한 北… 한국은 뒤통수 맞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4일 00시 00분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금수(禁輸)품목을 미국과 중국의 묵인 아래 파키스탄으로부터 제공받아 온 것이 드러났다. ‘파키스탄에너지위원회(PAEC)’가 중국 회사인 ‘베이징 선테크 테크놀로지’에서 핵개발 물자를 구입해 북한에 우회 수출하다 적발됐다고 22일(현지 시간) 인도 언론이 미국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1998년 핵실험에 성공한 파키스탄은 북한에 원심분리기 설계도 등을 제공해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돕는 등 북핵 개발에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파키스탄이 핵폭탄 제조 등에 쓰이는 내열합금을 북한에 제공해왔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목한 북의 제재 대상자들이 최근까지 파키스탄을 제집 드나들듯 했다니 국제사회의 대북(對北)제재 공조에 구멍이 뚫렸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작년 11월 파키스탄 정부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에 북과의 연관성을 시인했는데도 미국이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이 경악스럽다. 이슬람 세력에 맞선 ‘테러와의 전쟁’에 파키스탄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이라면, 북핵 위협에 대응 수단도 없이 한미동맹에만 의지해온 한국은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것과 다름없다.

원자력 물자가 핵개발 위험국에 수출되지 않도록 하는 통제기구인 핵공급국그룹(NSG) 연례총회를 앞두고 이 같은 보도가 터져 나온 것도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의 NSG 가입을 적극 추진하는 반면, 중국은 미국과 밀월관계에 들어선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인도와 적대적인 파키스탄의 NSG 가입을 요구한다. 중국이 북-파키스탄의 커넥션을 파악하고도 이를 덮었던 이유다. 한국의 ‘북한 비핵화 외교’가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미국과 중국 앞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올해 NSG 의장국으로 어제 서울에서 개막된 NSG 총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북핵 문제는 국제 비확산 체제의 최대 위협”이라며 “국제사회가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고 연설한 것도 미국과 중국의 북한 핵 거래 묵인 앞에선 공허하게 들린다. 입만 열면 미국과 역대 최상의 관계라고 했고 중국과는 솔직한 의견을 교환하는 단계라며 대북제재의 국제공조를 호언장담한 한국 외교의 현주소가 이 정도란 말인가.

북한은 중장거리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성공해 괌의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게 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어제 보도했다.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무수단의 실제적 위협 앞에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아닌 핵 동결만을 겨냥한 협상에 전격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신(新)고립주의와 현실주의로 돌아선 미국이 북한과 핵 비확산에 ‘과도적 합의’를 한다면 북한을 완충지대로 유지하려는 중국에는 불리하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 북한이 모두 만족하는 핵 동결에 합의하는 순간, 북한 비핵화를 강조해온 한국은 ‘닭 쫓던 개’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북의 핵·미사일 도발에 “강력 대응”만 외치는 정부가 이런 전략적 딜레마까지 고려해 안보 외교 전략을 세우고 있는지 답답하다.
#북한#파키스탄#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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