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만 산다”… 이 악문 그녀, 짜릿한 반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8일 03시 00분


[올라!2016 리우올림픽/열정]유도 정보경 銀… 한국에 첫 메달

금빛 염색한 정보경 정보경이 7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2에서 열린 유도 여자 48kg급 준결승에서 쿠바의 다야리스 알바레스를 상대로 2분 22초 만에 두 번째 절반 기술을 성공시켜 승리를 결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금빛 염색한 정보경 정보경이 7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2에서 열린 유도 여자 48kg급 준결승에서 쿠바의 다야리스 알바레스를 상대로 2분 22초 만에 두 번째 절반 기술을 성공시켜 승리를 결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나는 오늘만 산다.”

영화 ‘아저씨’(2010년)의 주인공 원빈이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남긴 대사다. 정보경(25·안산시청)은 6월 유도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기다렸다는 듯 이 대사를 끄집어냈다. 대표팀 이원희 코치가 해 준 말이었지만 매트에 설 때마다 떠올린다고 했다. 자신도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오늘만 산다는 생각으로 4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정보경이 처음 나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메달을 안겼다. 금메달을 기대했던 사격의 진종오와 유도의 세계 랭킹 1위 김원진이 노 메달에 그친 뒤에 나온 은메달이라 더 반가웠다. 한국 여자 유도가 올림픽 결승에 오른 것은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이후 20년 만이며 메달을 딴 것은 2008년 베이징 대회 이후 8년 만이다.

세계 랭킹 9위 정보경은 7일 열린 여자 48kg급 8강전에서 세계 1위 몽흐바틴 우란체체그(몽골)를 꺾은 데 이어 준결승에서 다야리스 알바레스(쿠바)를 한판승으로 이기고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세계 랭킹 3위 파울라 파레토(아르헨티나)를 넘지 못했다. 정보경은 지난해 8월 아스타나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도 파레토에게 유효패로 졌었다. 당시 금메달리스트도 파레토였다.

2011년 8월 세계선수권대회를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한 정보경은 이듬해 2월 부다페스트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수준이 높은 대회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번에도 사실상 ‘깜짝 은메달’에 가깝다. 대회 직전 대한체육회가 만든 경기력 평가 분석에 따르면 정보경의 예상 성적은 입상권이 아닌 상위권이었다.

초등학교 때 ‘태권 소녀’였던 정보경은 경남 양산 웅상중에 입학한 뒤 선생님의 권유로 유도를 시작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여자 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배상일 동해시청 감독은 “힘을 타고난 데다 기술도 좋아 언제든 상대를 메칠 수 있는 선수다. 하지만 경남체고에 다닐 때 십자인대가 끊어져 1년을 통째로 쉬었고, 경기대 3학년 때도 양 무릎을 크게 다쳐 오랜 시간 운동을 못한 탓에 눈에 띄는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4년 전 정보경은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정정연(29·포항시청)의 훈련 파트너였다. 정보경은 “당시 너무 서러웠다. 그래도 훈련 파트너로서 간접적으로나마 올림픽을 경험한 덕분에 나도 국가대표 1진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림픽 출전을 기념하기 위해 출국 일주일 전 머리를 염색했다는 정보경은 메달을 딴 뒤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가 터닝 포인트였다. 명단에 없었다가 운 좋게 기회를 얻었고 우승까지 차지해 자신감을 얻었다. 그동안 남자 유도에 비해 여자 유도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내게도 기대를 안 했겠지만 매트 위에 설 때마다 ‘저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파레토를 상대로 방심하는 바람에 금메달은 놓쳤지만 끝까지 응원해 준 동료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꿈 얘기도 털어놨다. “브라질에 오기 2, 3주 전에 꾼 꿈인데 지금도 똑똑히 기억난다. 호랑이가 5마리 나왔는데 그 입으로 차를 타고 들어가는 꿈이었다. 그때부터 왠지 느낌이 좋았다”고 전했다.

정보경은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가운데 키(153cm)가 가장 작다. 하지만 자기 체중의 3.8배를 들어 올리는 괴력을 지녔다. 오늘만 산다는 각오로 땀을 흘린 결과다. 그 덕분에 정보경은 ‘리우의 작은 거인’으로 거듭났다.

리우데자네이루=강홍구 windup@donga.com / 이승건 기자
#올림픽#리우#유도#정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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