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아르코미술관에서 ‘만두파티’가 열렸다. 가마솥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꽃’이 피었다. 만두는 모두 1000개. 미술관 관람객과 행인들이 와서 만두를 먹었다.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김현일 바하밥집 대표(51)와 직원들이 만든 만두다. 사람들은 만두를 먹으며 바하밥집에서 일하는 노숙인과 전과자, 미혼모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만두파티는 노숙인 등 전 세계 주거난민을 다룬 기획전인 ‘홈리스의 도시’와 연계해 열렸다. 전시를 기획한 목홍균 독립큐레이터가 노숙인의 생활을 알기 위해 김 대표를 찾아가 만두파티를 제안했다. 김 대표를 만나봤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사업을 하다 빚더미에 올라 서울역 등을 전전하며 노숙을 했죠. 그러면서 안정적인 주거의 필요성을 절감했어요. 이후에도 퀵서비스와 포장마차, 생수 배달, 막노동을 하면서도 노숙인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그는 어린이집 차량 운전사를 하던 2009년 거리에서 남은 음식을 먹는 노숙인에게 컵라면을 사다준 것을 시작으로 혼자 ‘컵라면 급식’에 나섰다. 처음엔 5개로 시작했지만 차차 30개, 70개 등으로 늘었다. 동시에 사비를 털어 고시원을 빌렸다.
“의식주가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먹는 건 무료 급식소 등지로 발품을 팔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주거 문제는 다르더라고요. 내 다리를 뻗고 안심하고 자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음식만 주는 건 일회성으로 그친다는 걸 절감했어요.”
그는 고시원에 노숙인을 데려와 공장 일자리를 소개해줬다. 이따금 자활에 성공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러다 2012년 김 대표에게 임대아파트가 생기자 큰 결심을 하게 됐다. 결혼 후 20여 차례 이사를 다녔지만 주거가 안정되니 평소 꿈꾸던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2012년 어린이집 운전사를 그만두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바하밥집을 차렸다. 50m² 규모의 바하밥집에는 카페와 만두가게, 베이커리가 함께 있다. 김 대표와 알고 지내던 70대 만두 명인은 만두 제조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한 방송 작가는 노숙인 365명을 찾아다니며 백지에다 숫자를 쓰게 해 달력을 만든 뒤 이를 팔아 운영 자금을 댔다.
바하밥집 벽에서는 ‘브룩스가 여기 있다(Brooks is here)’란 문구를 볼 수 있다. 감옥생활을 다룬 영화 ‘쇼생크 탈출’의 인물 브룩스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한 후 적응을 못하고 모텔에서 자살하며 ‘브룩스가 여기 있었다(Brooks was here)’란 문구를 유서로 남겼다. 바하밥집은 이를 현재형으로 바꿔 노숙인들에게 희망의 빛을 나눠주고 있다. 실제로 28년간 수감생활 후 노숙을 하던 사람이 바하밥집에 와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 그는 “세상이 날 버렸고, 나도 나를 버렸었다. 술 취해 거리에 누운 나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준 이는 바하밥집 주인장이었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주택 2채를 월세로 빌려 노숙인, 미혼모, 새터민 등이 함께 사는 그룹홈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내가 쉴 수 있는 방 한 칸, 함께 기대며 살아가는 사람, 작지만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좋다”고 입을 모은다.
김 대표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노숙인 복지 문제라면 누구보다 먼저 팔을 걷는다.
“이 도시에서 저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고 싶습니다. 따뜻한 한 끼의 식사가 뜻밖의 기적을 낳을 수 있다는 걸 믿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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