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광복절 71주년 경축사에서 ‘국민’이라는 단어를 20회 언급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가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며 ‘헬조선’류의 자기비하 풍조를 비판했다. 또 “우리의 운명이 강대국들의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피해 의식과 비관적 사고를 떨쳐내야 한다”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의 당위성도 역설했다.
한국의 발전상에 비해 ‘헬조선’과 ‘흙수저’ 같은 신조어에서 자조(自嘲)가 지나치다는 대통령의 인식에 동의한다. 안보·경제·국론분열의 복합 위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적 단합과 공동체 의식을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아 임기 후반 여소야대(與小野大) 난국을 헤쳐 나가고 싶을 것이다. 국민 마음속에 자신감과 공동체 의식을 절로 우러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리더십이고, 지도자의 역할이다.
박 대통령이 자동차 철강 선박 스마트폰 같은 제품과 케이팝 한류를 예로 들며 “여러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오늘의 대한민국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낀다”고 평가했듯이, 외국에서 한국 제품과 한류 스타를 보며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급부상했고, 무능한 불통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지난 4·13총선에서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으로 귀결된 점을 떠올린다면 신조어만 탓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정부인데 대통령은 이것을 모르는 것 같다.
한국 정부는 스마트폰처럼 우수하거나 신뢰받는 수준이 아니고 케이팝 스타 같은 환호를 받는 정치인도 없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긴 2015년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140개국 중 26위지만 정책 투명성(123위)과 규제 부담(97위) 등 정부 경쟁력은 최하위 수준이다. 박 대통령은 “모두가 남 탓을 하며 자신의 기득권만 지키려 해 공동체 의식이 실종됐다”고 지적했지만 경축사부터 ‘남 탓’만 있고 박근혜 정부와 대통령 자신에 대한 자성(自省)이 빠진 것이 아쉽다.
박 대통령은 “법을 불신하고 경시하는 풍조 속에 떼법 문화가 만연했다”고 했으나 불신풍조를 만든 것은 특권 의식과 도덕적 해이에 빠진 사정·사법기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정수석 우병우-검사장 진경준-넥슨 김정주’의 특권 커넥션 의혹은 법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아이콘이 됐다.
아직도 ‘정피아’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대통령에게 '할 수 있다' 같은호소를 들어야 하는 국민은 피곤하다. 박 대통령이 ‘역전의 드라마’로 소개한 리우 올림픽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파벌이나 학연, 지연, 금수저 봐주기 없이 공정하게 실력으로 승부했다. 공정하게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사회로의 개혁이야말로 지금 정치 리더십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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