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한 유럽총국장, 공관 운영자금 총괄… 北외교관들 패닉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0일 03시 00분


유럽내 北외교관들에겐 ‘上王’
北대사들 잘보이려 머리 숙여… 현금 아닌 비자금계좌 챙겨 망명
김평일 체코주재대사 급거 평양에, 자금확보 때문인듯… 아직 복귀안해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국장 김명철(현지 사용 이름)이 올 6월 서방의 한 국가에서 잠적하면서 유럽 내 북한 공관들이 패닉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소식통은 19일 “김 총국장이 갖고 잠적한 4000억 원가량 가운데 유럽 내 북한 공관 운영비와 외교관 생활비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사태 때문에 유럽 내 북한 외교관 중 최고 원로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체코대사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급히 평양에 들어갔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잠적한 김명철의 직책은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국장으로 돼 있지만 유럽 공관들의 운영자금을 총괄하고 있어 북한 외교관들로부터 ‘상왕(上王)’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 잘 보여야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 대사들도 그가 나타나면 머리를 숙여야 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김 총국장의 위상은 한국에 망명한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와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높다”며 “그런 사람이 망명을 선택했기 때문에 북한 외교관들과 해외 무역일꾼들이 받았을 충격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본국에서 특수요원까지 대거 급파해 기를 쓰고 김 총국장을 추적하는 이유도 그의 망명이 가져올 충격파가 너무나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김 총국장의 잠적이) 사실관계는 맞지만 한국 정부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총국장이 갖고 잠적한 4000억 원은 현금이 아닌 계좌에 든 자금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노동당 자금을 관리했던 고위급 탈북자는 “그가 돈을 직접 들고 움직였다기보다는 자신이 관리하던 비자금 계좌를 챙겨 해당 국가에 망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국장의 망명 시점이 6월인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북한의 최대 비자금 은신처로 알려진 스위스 정부는 6월 2일을 기준으로 자국 내 북한 은행 지점과 계좌를 모두 폐쇄했다. 이때 다급해진 북한이 스위스 은행에 있던 자금을 황급히 옮기는 과정에서 김 총국장이 거액을 챙겨 망명할 기회가 생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편 김 총국장의 아들 가운데 한 명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5월 현지 언론에 자신이 시작한 금융 관련 벤처기업을 홍보하는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이 기사는 김 총국장의 망명 사실이 보도된 직후 해당 언론사 사이트에서 삭제됐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명철#북한공관#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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