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배경은 미국 뉴욕 중심부 맨해튼에 위치한 한 잡지사의 편집부 사무실이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서울의 일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실적이다.
주인공인 글로리아는 잡지사 교열부의 직원이다. 15년간 회사를 다녔지만 그는 직장 내 ‘왕따’다. 동료들은 그를 두고 ‘감정 테러리스트’ ‘불쌍한 여자’라 평한다. 글로리아는 평범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울하고 어색한 기운을 내뿜는다. 오랫동안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체화된 특성이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집을 장만한 글로리아는 용기를 내 집들이 파티를 연다. 하지만 그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단 한 명, ‘인맥 쌓기’에 혈안이 된 딘뿐이다.
등장인물들은 글로리아뿐 아니라 서로를 공격하고 비아냥거린다. 백인 남성이지만 게이인 ‘딘’, 좋은 대학 출신에 백인이지만 여성인 ‘애니’, 하버드대 출신 흑인인 ‘마일즈’, 패셔니스타에 부자이지만 동양인 이민자인 ‘켄드라’까지…. 모든 인물이 미국 사회 내 마이너리티의 요소를 지녔다. 자신의 약점을 최소화하고 사회 시스템이 요구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 모두가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약점을 공략한다.
1막 막바지, 글로리아는 권총으로 집들이에 온 딘과 방탄유리로 도배된 사무실에서 일하는 책임 에디터 낸, 업무시간에 커피를 사 먹으러 스타벅스에 간 켄드라를 제외하고 동료들을 모조리 쏴 죽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2막에선 생존자인 딘, 낸, 켄드라가 생전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글로리아를 둘러싼 책 출간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비열하고 가증스럽다.
글로리아의 총기 사건이 벌어지기 5분 전, 인턴 신분인 마일즈가 책임 에디터 낸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여긴 너무 불행해 보여요.” 팩트체크팀의 팀장인 로린이 동료들에게 건네는 말도 묘하다. “이 잡지사가 글로리아 인생의 전부야. 오래 일하면 이 잡지사가 네 영혼을 다 갉아먹을 거야. 꼰대가 되고, 결국 빈집 하나밖에 안 남을 거야.” 씁쓸하지만, 직장인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대사다.
세련된 무대와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로린 역의 정원조를 제외하곤 모두 1인 2역 연기에 나선다. 특히 상반된 캐릭터인 글로리아와 낸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임문희의 연기가 일품이다. 전혀 다른 배우가 연기한다고 느낄 만큼 전혀 다른 감정선을 카멜레온처럼 표현해 낸다. 2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 4만 원, 070-4141-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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