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담장에 詩-그림 입히자 범죄 ‘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8일 03시 00분


삼양동 등 ‘범죄예방디자인’ 효과

2014년 폐가로 방치돼 있던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한 주택(왼쪽 사진)이 지난해 서울시의 범죄예방디자인이 도입된 후 벽화와 지붕 수리 등을 통해 멋진 집으로 변신했다. 서울시 제공
2014년 폐가로 방치돼 있던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한 주택(왼쪽 사진)이 지난해 서울시의 범죄예방디자인이 도입된 후 벽화와 지붕 수리 등을 통해 멋진 집으로 변신했다. 서울시 제공
일요일인 4일 오후 서울 강북구 삼양동 솔매로. 초가을 날씨에 주민들은 동네 한가운데 위치한 텃밭 옆에서 간식을 나눠 먹고 있었다. 이들의 건너편에는 빈집을 가려주는 가림막이 있었다. 가림막에는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시(詩) ‘굳게 맺은 언약’이 적혀 있었다. 평화로운 어느 마을의 주말 풍경이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삼양동은 강북구의 우범 지역 중 한 곳이었다.

삼양동은 2000년대 후반 서울 전역에 휘몰아친 뉴타운 열풍으로 홍역을 앓았다. 인근 미아지구가 뉴타운 부지로 선정되면서 이곳 역시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해도 10분 이상 걸어야 하는 등 생활 인프라는 열악했다. 거주환경이 불편한 삼양동에 비싼 돈을 주고 들어오려는 세입자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결국 동네 곳곳에 빈집 20채가 생겼다. 빈집은 비행 청소년들 차지가 됐다.

그렇게 몇 년간 병들어가던 삼양동 일대는 지난해 서울시의 범죄예방디자인(CPTED·셉테드)이 도입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쓰레기로 뒤덮여 있던 마을 공터는 텃밭으로 변했다. 지금은 땅콩과 도라지가 수확기를 앞두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빈집에 설치된 가림막은 주민들을 위한 게시판과 갤러리로 바뀌었다. 일부는 청년들을 위한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변신 중이다. 주민 최종원 씨(69)는 “쓰레기 때문에 싸우고 빈집 때문에 불안해하던 주민들이 동네가 변하자 동호회를 만들고 텃밭을 가꾸는 등 돈독한 사이가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삼양동뿐 아니라 서울의 낙후 지역 곳곳에 셉테드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 셉테드는 디자인을 통해 범죄자의 심리를 위축시켜 범죄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2012년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재건축 중단 지역을 시작으로 2016년 현재 24곳에 셉테드를 도입했다.

덕분에 이 지역의 범죄율은 뚝 떨어졌다. 범죄예방디자인이 도입된 용산구 용산2가동(용산서 한강로파출소)과 관악구 행운동(관악서 낙성대지구대)의 112 중요범죄(살인, 강·절도, 성폭행 등) 사건 접수는 2013년에 비해 2015년 각각 22.1%와 10.9%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서울지방경찰청 전체 112 중요범죄의 평균 사건 접수가 4.7%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박준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재건축 중단 지역은 범죄자에게 ‘관리가 안 되는 지역’이란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범죄에 취약한 편”이라며 “셉테드는 미국과 일본 등에서 이미 범죄 예방 효과가 검증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셉테드가 효과를 거두자 2018년까지 서울 전역 50곳으로 확대 시행할 방침이다. 고홍석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범죄 예방뿐 아니라 고령화, 학교폭력 등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 디자인을 접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폐가#비행청소년#셉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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