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만 보면 더럽게 재미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감수성 짙은 데다 인간에 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최근 개봉된 ‘이퀄스’다. 영화는 핵전쟁 후 생존자들이 세운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사랑, 분노, 질투 같은 인간적 감정이 모든 갈등과 전쟁의 씨앗이라고 판단한 선진국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감정 능력을 상실한 평준화된 시민들을 생산해낸다. 사랑을 느끼는 일부 인간은 ‘감정보균자’이자 ‘결함인’으로 분류되어 교화되거나 제거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남녀 주인공인 사일러스(니컬러스 홀트)와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서로를 향한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을 느끼는 것. 처음엔 죄책감에 사로잡히지만 결국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둘은 국경을 넘어 ‘결함인’들이 모여 사는 반도국으로 탈출을 감행한다는 얘기다. 영화 속 남녀는 마치 맹자의 만물개비어아(萬物皆備於我·만물의 이치가 모두 내 안에 갖춰져 있다) 철학을 연상하게 하는 멋진 대사를 외친다. “우리의 미래는 세상 어디에도 있어. 우주일 수도, 아니면 우리 안에 있을 수도.” 그렇다. 우주는 사랑하고, 좌절하고, 또다시 욕망하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인간적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 신의 선물인지를 은유적으로 알려줌과 동시에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사회적 기준이 지배 이데올로기나 힘의 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되고 조작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올해로 67세인 북한의 2인자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아들뻘 되는 김정은에게 무릎을 꿇은 채 수줍게 이야기하는 개그콘서트 같은 장면이, 북한에선 ‘정상’인 수준을 넘어 ‘상서로운’ 장면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메릴 스트립과 휴 그랜트가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증명한 영화 ‘플로렌스’를 보면서 ‘일부일처제’라는 공고한 제도가 ‘비정상’은 아닐까 하는, 매우 비정상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전 남편에게서 옮은 매독 병균에 하루하루 죽어가는 부잣집 상속녀 플로렌스(메릴 스트립). 지독한 음치이지만 스스로는 모른다. 사랑하는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는 것으로 삶을 지탱하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헌신적인 남편 베이필드(휴 그랜트)는 매니저를 자처한다. 아내의 공연에 대한 악평이 실린 신문들을 몽땅 사 휴지통에 쓸어 넣으면서 아내가 자존감 속에서 마지막까지 살아가도록 배려한다. 아내의 침대 곁에서 아내가 잠들 때까지 꿈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편은 잠든 아내의 이마와 뺨에 따스하고 인자한 키스를 한 뒤 방을 나선다. 그런데, 남편이 향하는 곳은 젊고 매혹적인 애인이 기다리고 있는 ‘세컨드 하우스’가 아닌가! 남편은 애인에게도 신사적인 매너를 잃지 않으면서 정성을 다한다.
실화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부부 간의 사랑과 헌신에 대한 우리의 ‘정상적’인 생각을 뒤집는다. 죽어가는 아내를 끝까지 돌보는 헌신적인 남편이 딴살림을 차린다? 언뜻 납득되지 않지만 영화 속 그랜트는 얼마나 진정성 있게 연기를 하는지, 아내를 사랑하고 애인도 사랑하는 멀티태스킹의 전범으로만 여겨지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사랑은 단 하나뿐이라는 우리의 보편적인 생각도 어쩌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혹은 주입된 신념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비정상적인 소수를 ‘변태’라 부른다. 최근의 대표적 변태로는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신은 양말만 반강제적으로 사서 냄새를 맡은 ‘양말 변태’, 여교사들의 실내화만 훔쳐 냄새를 맡은 ‘신발 변태’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범죄 사례가 아니라면 남다른 취향이나 끌림을 가진 경우는 적지 않다. 무지외반증 발을 보면 마음이 발동하는 사람과 더불어 황순원의 ‘소나기’만 읽으면 성적 욕구를 느낀다는 내 선배는 좁은 개념의 변태일 것이다. 또 ‘아이가 타고 있어요’란 스티커를 자동차 유리창에 붙인 채 난폭운전을 하는 운전자나 “Is it ill? Is it really ill? Let me know it′s ill. If it′s really ill”(노래 ‘1llusion’)이라고 노래하면서 유독 ‘1(일)’이라는 글자에 도착증세를 보이는, ‘일’리네어 레코즈 소속의 힙합 뮤지션 도끼는 넓은 의미의 변태일 것이다.
어쩌면 강호에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상과 비정상도 없을지 모른다. 다만 절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사연과 상처만이 있을 뿐. 지금의 세상은 소중한 ‘감정보균자’들이 점점 살아가기 어려운, 지독한 사막으로 변해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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