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우지희]비혼-딩크族, 자유인인가 겁쟁이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8일 03시 00분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나는 아이가 없는 결혼 3년 차 주부이다. 유부녀 경력으로는 아직 병아리에 불과하지만 미혼 남녀들에게는 나름대로 선배 노릇을 하느라 결혼이나 연애에 관해 조언을 해줄 일이 종종 있다. 누군가의 인륜지대사를 두고 섣불리 말하는 것이 참 조심스러운 일이라, 보통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결혼 명언(?)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애용하는 문구는 “뭘 모를 때 하는 게 결혼”이라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뭘 알면 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사실 ‘아는 것이 병’이 되는 경우는 결혼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 전반에 걸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도 부모님께서는 항상 “앞만 보고 달렸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먹고살기가 바빴고, 너희들을 키우느라 여념이 없어서 한눈팔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그 대신 눈앞에 주어진 일들을 해치우는 것만은 매진하셨단다. 학교를 졸업하면 돈을 벌었고, 돈이 모이면 결혼을 했고, 그러고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인생의 항로였다. 그 외의 길은 쳐다볼 기회가 없으셨다. 그렇게 살아야 했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렇게 살아온 윗세대가 일구어낸 바탕 위에서 우리 세대가 자랐다. 상대적으로 풍요롭고 넉넉한 삶을 보내며 훨씬 더 많은 안정과 여유를 누리게 된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모든 영역에서 선택의 여지와 자유로움이 생겼다. 당장 밥과 김치 대신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진로나 직업부터 결혼 여부, 자녀의 유무 모두 어느 것 하나 ‘눈앞에 주어진 일’이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당연시되는 것이 없다. 사회적 인식은 느슨해지고 개개인의 가치관 추구를 더 중시하게 된 첫 세대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갈 수 있는 길이 많아지니 오히려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하는 문제가 생겼다. 당장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우리 엄마는 생각해본 적도 없을 고민 앞에서 오늘도 갈팡질팡한다. 동료나 미디어로부터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사전 지식을 너무 많이 알아 버리고 나니 “낳아 놓으면 저절로 큰다”는 말은 믿지 않게 되었고 자연히 그에 따른 두려움도 동시에 커져 이내 ‘딩크족’이 되기로 했다. 하지만 귀여운 조카를 보며 아이로 인한 행복을 떠올리면 또 마음을 바꿔 출산을 결심한다. 결혼 역시 개인 가치관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되어 ‘비혼족(非婚族)’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마저 생겼다. 그러나 결혼을 안 하자니 그에 따르는 걱정도 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이만 먹는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나마 길이 양 갈래로 나뉜 출산과 결혼이 이럴진대 여러 갈래 길이 있는 학업이나 커리어는 훨씬 더 복잡한 경우의 수가 생긴다.

어쩌면 자유의 동의어는 겁쟁이가 아닐까. 넓어진 선택의 폭 앞에서 어쩐지 겁을 집어먹고 고민하고 있는 우리 세대의 현주소를 보고 있자면, 과연 이것을 배부른 고민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인생의 핸들은 내가 쥐고 있기에 마음대로 돌릴 수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두렵다. 자칫 엉뚱한 길로 들어서 후회하거나 큰 사고가 날까 걱정이 되고, 차라리 정해진 길대로 따라가는 것이 편하려나 싶을 정도다. 그런 겁쟁이 중 하나인 나는 “선배, 그래서 결혼을 할까요, 말까요”라고 묻는 후배에게 오늘도 선조들의 또 다른 명언으로 대답을 한다. “야, 해도 후회고 안 해도 후회니까 마음대로 해.” 아마 유부녀 경력이 더 쌓여 나름대로 해답이 생겨도 똑같이 답할 것 같다. 결국 자유, 선택, 그런 것들은 겁이 나도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일 테니. 그렇게 만들어진 개개인의 선택이 또 하나의 세대를 만들어 갈 테니 말이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유부녀#결혼#비혼족#딩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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