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제18회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 시상식이 열렸다. 푸르덴셜사회공헌재단과 한국중등교장협의회가 자원봉사를 통해 따뜻한 이웃 사랑을 실천한 모범 중고교생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자리다. 이날 행사에서 서울여자상업고 3학년 성수림 양(18)이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양주백석고 2학년 최정태 군(17)이 행정자치부 장관상을 받았다. 두 학생은 친선대사로 선정돼 2017년 5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푸르덴셜 미국 중고생자원봉사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 중국어로 이주민들의 ‘메신저’
성 양은 경기 구세군 안산 다문화센터에서 ‘메신저’로 통한다. 집주인의 횡포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중국인 아저씨, 센터 내 무료 진료소에 왔지만 한국인 의사와 말이 통하지 않아 증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중국인 할머니를 위해 통역 일을 3년째 맡고 있다. 환자들이 약을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부터 연고를 어떻게 발라야 하는지까지 성 양이 의사, 약사처럼 설명해 준다. 이 외에 교회 예배 설교 내용을 중국어로 동시통역하고, 비자와 관련된 중국어 서류를 번역하는 일 등을 맡고 있다.
성 양은 다섯 살 때부터 중국 창춘 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열두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졸업 후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생각보다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전산, 회계, 컴퓨터 활용 능력, 무역 관리사 자격증 시험에도 번번이 떨어졌다. 의욕과 자신감을 상실한 채 의기소침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안산에 있는 다문화센터에서 이주민을 위한 중국어 통·번역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집에서 안산까지 왕복 4시간이나 걸렸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중국어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중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동시통역이나 서류 번역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전문성 있는 단어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류가 생기면 이주민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리 설교 원고를 받아 단어를 확인하며 실수하지 않도록 준비했다. 이런 노력 끝에 성 양은 센터를 찾는 다문화인들에게 사랑받는 통역 봉사자가 됐다. 3년 동안 성 양의 활동을 지켜 본 최혁수 구세군 안산 다문화센터장(45)은 “안산에는 약 7만5000여 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이 가운데 5만여 명이 중국인”이라며 “그만큼 수림이에게 주어지는 업무량이 많아 힘들고 스트레스도 받을 텐데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봉사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 아동센터 ‘집사’가 된 공부방 선생님
동생이 없어 평소 어린아이 돌보기를 좋아하던 최 군은 집 근처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자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해 3월 친구 세 명과 함께 센터를 찾아갔다. 지역아동센터가 주로 저소득층, 다문화, 조손 가정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을 돕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더 애착을 느꼈다.
봉사를 시작하고 한두 달 뒤 함께 일을 시작한 친구들은 학업 등을 이유로 센터를 떠났지만 최 군은 센터에 손이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을 알고 있던 터였다. 그때부터는 거의 매일 센터에 나가 아이들을 돌봤다. 학기 중에는 하교 후 저녁에, 주말과 방학에는 정오부터 센터에 나가 아이들과 놀아 줬다.
처음에는 청소와 생활복지사 업무 보조 등 단순한 일을 주로 했지만, 점차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됐다.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을 지도하고, 아이들에게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습 멘토가 됐다. 실제로 최 군의 지도를 받은 센터 아이들의 성적이 쑥쑥 올랐다. 해당 지역아동센터에서 근무하는 김화정 복지사(31·여)는 “정태는 우리 직원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집사님’으로 통한다”며 “시계 걸기부터 전구 갈기, 책상 고치기 등 힘이 필요한 일을 도맡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자기 친동생 이상으로 살갑게 돌봐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봉사활동을 이어 나가는 데 그치지 않고 활동에 관심이 있는 교내 1, 2학년 학생들을 모아 봉사 동아리 ‘은하수’를 만들었다. 이 동아리에 모인 30명의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은 요일별로 5명씩 체계적인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최 군은 업무 부담에 시달리는 생활복지사를 대신해 센터에서 자원봉사자 관리도 맡고 있다. 그는 “센터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나처럼 봉사활동가가 되겠다고 이야기할 때 가장 뿌듯하다”며 “이제 곧 성인이 될 텐데 차를 사서 센터 아이들을 태우고 현장학습을 가는 게 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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