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톡톡]외국산에 포위된 국산맥주, 추억의 맛으로 버틸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9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한때 북한 맥주보다도 맛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은 국산 맥주. 그런데 지난해 국산 맥주 수출액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한류 열풍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 애주가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맥주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이럴 때 한잔

 
“야근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에요. 때론 밤 12시가 돼야 집에 들어가는데 집 앞 편의점에서 기네스 흑맥주 4캔을 사서 가요. 샤워하고 소파에 앉아 맥주 캔을 ‘탁’ 따서 시원하게 마시면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는 풀리는 느낌입니다. 새벽에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지만요.”―장문준 씨(34·은행원)

“맥주는 무조건 기분 좋을 때 마셔야 해요. 컨디션이 좋아야 맥주가 가지고 있는 맛과 향을 모두 느낄 수 있거든요. 맥주도 와인만큼 예민한 술입니다. 우울하거나 컨디션이 나쁠 때 맥주를 먹으면 아무런 맛을 못 느끼고 그냥 부어라 마셔라 하게 돼요.”―김욱연 씨(47·수제맥주 학원 ‘굿비어 공방’ 대표)

“술자리에서 왠지 빨리 취하고 싶은 날이 있잖아요. 그렇다고 소주만 먹기엔 너무 쓰고. 이럴 때 맥주가 답이죠. 맥주에 소주 조금 섞어 시원하게 한잔 마시면 금방 알딸딸해집니다. 안주 나오기 전에 두세 잔 마시면 딱 좋더라고요. ‘소맥’만큼 목 넘김이 좋으면서 맛이 있고 빨리 취할 수 있는 술이 또 있을까요?”―김무락 씨(35·변호사)

“살이 잘 찌는 체질이어서 다이어트를 꾸준히 하는데 정말 배고플 땐 잠이 안 와요. 그러면 저칼로리 맥주 한 캔을 먹고 잡니다. 안주는 물론 안 먹고요. 주로 카스라이트를 먹는데 다이어트 중 늦은 밤 먹는 저칼로리 맥주 한잔의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압니다.”―이민기 씨(32·회사원)

“제가 만든 방송을 보고 사람들이 삶의 용기를 얻었다고 해줄 때 맥주 한잔이 당겨요. 습관이 되다 보니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했다 싶으면 맥주가 떠오르더라고요.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마시는 것도 좋고, 혼자 텅 빈 방에서 불 다 끄고 TV만 켠 채 적적함을 즐기며 마시는 맥주도 좋습니다.”―유경현 씨(34·PD) 
뒷맛의 기억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진출했을 때 친구들과 호프집에서 밤새워 생맥주를 마셨어요. 확실히 맥주는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 이후로도 수없이 맥주를 마셨지만 월드컵 때만큼 맛있게 먹은 맥주는 없었어요.”―이동하 씨(33·음식 블로거)

“2006년 일본에 혼자 여행 갔을 때 첫 번째로 도착한 허름한 쇠고기구이집에서 삿포로 생맥주를 시켰죠. 맥주를 입에 댔는데 어떻게 맥주에서 이런 맛이 날까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품이 크림 같았어요.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일본 생맥주를 먹을 기회가 없었거든요.”―이영승 씨(42·‘서울맛집유랑’ 저자)

“2014년 데블스 도어에서 두 달간의 맥주시설 공사를 마친 뒤 맥주탱크에서 처음 뽑아낸 맥주가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였습니다. 그 맥주를 만들 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참여했거든요. 첫 모금을 넘기는데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오진영 씨(40·수제맥주 전문점 ‘데블스 도어’ 브루마스터) 
안주를 따라서
 
“강원 강릉시 주문진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오징어를 택배로 시켜요. 오징어가 배달 오면 튀김옷을 넉넉히 입혀서 바싹 튀겨내 맥주와 함께 먹습니다. 차가운 맥주의 기운이 가시고 약간 쌉쌀한 맛이 입안에 돌 때 바삭한 오징어튀김을 한입 베어 물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습니다.”―성명수 씨(32·명품 편집매장 바이어)

“맥주엔 무조건 버펄로윙이에요. 닭 봉이나 날개에 우스터소스를 발라 짭조름하게 구워낸 안주야말로 시원한 맥주의 단짝이죠. 간을 잘 맞춰 구운 버펄로윙은 기분 좋은 짠맛이 나는데 맥주와 함께 먹으면 쓴맛을 잡아주고 달달한 맛만 남겨줍니다.”―이상미 씨(32·아이싱온더케이크 파티시에)

“운동을 좋아해서 식단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가끔 맥주 한잔할 때는 안주로 편의점 닭꼬치를 즐겨 먹습니다. 조미료 맛이 강해서 꼭 불량식품을 먹는 느낌이 나는데 식단 관리하느라 꾹 참았던 식욕이 해방되는 느낌이 들어요. 일종의 일탈이죠.”―서지웅 씨(33·작곡가) 
유통 중 변하는 맛
 
“주량을 모르던 20세에 친구들과 술집에서 술을 먹었다가 집에 가는 길 내내 토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날 이후 밖에선 술을 안 먹습니다. 그 대신 집에서 혼자 치킨을 시켜놓고 TV를 보며 먹는 맥주의 맛을 알아가고 있어요. 맥주는 ‘혼술’을 하기에 적합한 술입니다.”―이예림 씨(26·취업준비생)

“한국 맥주는 같은 회사에서 나왔는데도 병맥주와 캔맥주 맛이 다른 게 아쉽습니다. 한국 맥주가 맛있다, 맛없다는 논쟁을 떠나서 최소한 병맥주와 캔맥주의 맛이 균질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병맥주의 맛을 더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목 넘김이나 톡 쏘는 맛이 더 좋습니다.”―최현우 씨(25·퍼스널 트레이너)

“맥주를 유통할 때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어요. 햇볕 쨍쨍한 곳에 병맥주나 생맥주통이 그대로 노출된 것을 많이 봤습니다. 햇볕에 두면 맥주 맛이 변하거든요. 전에 국내 대형회사 맥주공장에 가서 맥주를 먹었을 땐 진짜 고급스러운 맛이 났는데 냉장유통을 철저히 해야 그 맛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김재성 씨(34·회사원) 
까다로워진 입맛
 
“2013년 20세 이상 성인 남성이 1년간 마신 맥주는 150병에 이릅니다. 일주일에 3병꼴로 마신 셈이죠. 아마 지금은 더 늘었을 거예요. 그런데 주류 소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2013년 이후로는 맥주업체에서 소비량을 따로 집계하지 않고 있습니다.”―주류업체 관계자

“2014년 맥주 출고량은 217만3000kL로 2010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도수가 낮은 술을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 커지며 위스키 출고량은 감소세를 이어가는 반면 맥주 출고량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이정훈 씨(국세청 조사관)

“수제맥주가 인기를 끌며 맥주 시장이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맥주 취향도 세분하며 각자 입맛에 맞는 맥주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늘고 있죠. 더부스가 내놓은 쓴맛이 강한 대동강맥주 페일에일도 소비자들의 높아진 취향을 맞추기 위해 새로 만든 맥주입니다.”―김희윤 씨(29·수제맥주 전문점 ‘더부스’ 대표)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이 세계 맥주 시장의 변화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어요. 미국과 일본의 맥주 시장은 이미 고온으로 빠르게 발효시켜 쓴맛이 강하게 나는 에일 맥주로 가고 있는데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수제맥주의 다양한 향과 맛을 즐기고 양조장에서 맥주를 직접 만들어 보는 맥주 애호가도 많습니다.”―도정한 씨(42·맥주양조장 ‘더핸드앤몰트’ 대표)

“하나를 먹어도 고급스럽게 먹겠다는 ‘스몰 럭셔리’ 트렌드가 맥주 시장으로 옮겨 왔어요. 젊은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음식이나 디저트, 술 등 자신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소비를 할 때엔 기꺼이 지갑을 열죠. 아무래도 수제맥주는 조금 비싸니까요.”―김태경 씨(37·수제맥주 전문점 ‘어메이징 브루잉’ 대표)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맥주#국산맥주#외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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