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요리 프로그램이 없는 방송이 없고, ‘요섹남’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한 지도 한참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리를 독특한 창조 행위이자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는 것은 일부 사람에게 아직 어색한 것 같습니다. 요리와 음식의 과잉 담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담론의 빈도와 양에 비해 질적인 내용이 균형을 맞추어 가고 있지 못해 그런 비판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요리와 식사는 진지한 미학적 관심을 끌 만한 삶의 영역입니다. 미학(aesthetics)이란 말은 일상으로부터 멀리 있는 듯한 학술 용어입니다만, 그것이 우리의 감각에 관한 것이라면 좀 더 친근해질 수 있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상 오감이라고 해서 사람의 기본 감각으로 알고 있지요. 우리가 미학(美學)이라고 번역해서 쓰는 ‘에스테틱스’라는 말은 원래 ‘감각’이라는 어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직역하면 ‘감각학’이 됩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시각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과 비평을 논하는 학문으로 미학이 발전해왔기 때문에 좁은 의미로 번역해서 써온 것 같습니다.
청각예술에서는 음악의 미학이 중요합니다. 그러고 보니 전통적으로 중요한 예술 분야는 인간의 감각 가운데서 시각 또는 청각처럼 어떤 하나의 감각을 미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군요. 고대로부터 연극과 무용은 시각과 청각의 종합예술이었으며, 19세기 말 이후에 영화와 다양한 공연예술이 이에 가세해왔습니다.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고 어폐가 있습니다만 요즘은 영화의 ‘4차원(4D) 상영’으로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오감이 모두 동원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요리예술과 그것을 감상하고 향유하는 식사 행위에는 오감이 모두 동원됩니다. 요리와 식사 사이에는 음식이 있습니다. 요리는 음식을 창조하는 기예이고, 식사는 그것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하는 행위입니다. 요리에서나 식사에서나 시각은 중요합니다. ‘보기 좋게 차려 놓은 음식’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후각과 미각은 당연한 것이고요. 아삭아삭 씹을 때는 청각이 동원되며, 그렇게 씹히도록 음식을 준비하기도 하지요. 요리할 때 재료에 대한 촉각은 중요하고, 쫄깃쫄깃, 꼬들꼬들한 음식의 질감은 구강의 촉감과 밀접합니다. 오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식사가 즐겁겠지요.
식사를 즐긴다고 하면, 미식가나 식도락을 말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단한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식사에는 ‘감각적 즐김’이 암암리에 따라옵니다. 맛없는 음식을 계속 먹을 수는 없고, 맛있게 차려 놓은 음식을 맛없게 먹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안 그런 척할 수도 있지만 사실 어느 정도 일상의 미식가입니다.
철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인지과학이 중요합니다. 음식 재료를 구하고 선별하며 요리해서 먹는 과정이 오감을 모두 동원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인지능력 발달과 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리·음식·식사가 인간의 인지능력 향상의 원천’일 수 있다는 현대과학의 가설을 추론적으로 수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요리 과정에 의미 있고 재미있게 참여하면 인지능력을 증진시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과학적 조언’도 들어둘 만합니다.
곧 추석입니다. 축제는 요리의 문화성과 식사의 사회성이 잘 드러나는 때입니다. 학자들은 축제와 인지활동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나이 구분 없이 남녀 모두 요리와 식사의 인지활동에 기꺼이 참여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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