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이 11일(현지 시간) 뉴욕에서 열린 9·11테러 15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했다가 수차례 휘청거리며 차량에 실려 가는 등 건강 이상 증세를 나타냈다. 클린턴 캠프는 12, 13일 캘리포니아 주 유세를 전면 취소했다.
클린턴의 건강 이상설이 확산되며 클린턴과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70)가 초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미 대선 판세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어느 때보다 핵을 다루는 ‘최고 사령관’의 정신적 육체적 강인함이 요구되는 상황이라 국제적 이슈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
CNN은 “백악관 주인으로서 이슬람국가(IS), 북핵 등 복잡한 이슈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느냐를 놓고 심각한 토론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차량 앞에서 두 차례 크게 휘청
이날 클린턴에게서는 평소 유세 현장에서의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클린턴은 이날 오전 9·11테러 장소인 그라운드 제로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났다. 주변 사람들과 간간이 웃으며 인사를 나눈 클린턴은 추모행사가 시작된 지 1시간 반가량이 지나자 어두운 표정으로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떴다.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밴 차량 앞에 선 클린턴은 갑자기 앞뒤로 두 차례 크게 휘청거렸다. 부축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대로 쓰러질 정도였다. 부축을 받고 차량에 올라타면서도 인도와 차도 사이 턱에 발이 걸리고 무릎이 꺾여 차량 안쪽 좌석으로 쓰러졌다. 폭스뉴스는 “목격자들에 따르면 차량 안에서 졸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클린턴은 이 과정에서 신고 있던 신발 한 짝도 잃어버렸다.
이후 클린턴은 언론의 추적을 따돌리며 맨해튼에 있는 외동딸 첼시의 아파트로 이동해 1시간 40여 분간 휴식을 취한 뒤 뉴욕 주의 자택으로 갔다. 클린턴은 선글라스를 쓴 채 첼시의 아파트를 나오며 기자들에게 “(몸 상태는) 아주 좋다. 오늘 뉴욕이 아름답다”며 웃어 보였다. 클린턴 캠프의 닉 메릴 대변인은 “클린턴이 추모식 도중 더위를 먹어 딸의 아파트로 갔으며 지금은 아주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뉴욕의 오전 기온은 섭씨 25도 안팎이었고 습도는 40%로 쾌청한 편이었다. 얼마 후 클린턴 주치의인 리사 바댁은 성명을 내고 클린턴의 ‘9·11 쇼크’의 원인은 9일 확진 판정된 폐렴 탓이라고 밝혔다.
○ 백악관 입성 뒤 여러 차례 병력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은 “클린턴이 자신의 건강 문제에 대해 오래전부터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다”며 폐렴에 따른 쇼크라는 클린턴 측의 해명이 나온 과정을 문제 삼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건강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만큼 클린턴이 개인 e메일 스캔들처럼 여전히 무언가를 감출 수도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은 세간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백악관 안주인 시절 이후 여러 차례 병력(病歷)이 있었다. 폐가 아니라 주로 혈관 질환이었다. 1998년엔 오른쪽 다리에 혈전이 발생해 신발을 신기도 어려울 만큼의 고통을 받았다. 2009년에도 다리에 혈전이 생겼다. 같은 해 국무장관 시절엔 넘어져 오른 팔꿈치에 골절상을 입고 2시간 넘게 수술을 받았다. 가장 최근의 병치레는 2012년 국무장관 시절 뇌진탕으로 머리에 혈전이 생긴 일이다. 클린턴은 7월 개인 e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미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선 “뇌진탕 이후 보고받은 내용 모두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클린턴은 5일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연설에서도 연신 기침을 했다. ○ “두 고령 후보들 건강 정보 공개해야”
클린턴발 ‘9·11 쇼크’ 직후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남캘리포니아대(USC)와 이날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 클린턴은 45%, 트럼프는 44%로 불과 1%포인트 차였다. 블룸버그통신은 12일 월가의 투자자들이 클린턴의 건강 문제로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기존의 미국 경제 정책 기조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고령 후보의 건강 문제는 대선의 분수령이 될 26일 1차 TV 토론에서 최고의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와 클린턴이 이제라도 상세한 건강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 기록을 작성했던 데이비드 샤이너 박사는 9일 워싱턴포스트에 “트럼프와 클린턴은 2008년 (대선 당시 72세였던)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1200쪽이 넘는 건강 기록을 공개한 것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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