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필리핀 남부 지역에 파견된 미군 특수부대의 철수를 요구하고 나섰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파생된 인권 문제를 놓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막말로 위협해 라오스에서의 정상회담 일정을 취소당하는 수모를 겪은 뒤 미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이어가는 형국이다.
12일 현지 언론 ‘필리핀스타’ 등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날 필리핀 대통령궁에서 신임 관료 임명식 축사를 하면서 “미군 특수부대는 남부 민다나오 지역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민다나오 지역은 정부에 대항하는 이슬람 반군단체의 활동이 활발한 위험지역이다. 아부 사야프 등 무장 이슬람 반군단체는 독립을 주장하며 폭탄테러와 외국인 관광객 납치 등을 일삼고 있다. 미국은 2002년부터 특수부대원 1300여 명으로 구성된 군사지원단을 파견해 이슬람 반군단체 소탕전을 지원하고 있다. 필리핀 헌법상 외국 부대가 내전에 직접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군은 필리핀군 교육과 훈련을 돕는 역할을 하며 주둔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민다나오 지역의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지 않는다면 아부 사야프 등 무장세력의 손에 죽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미군이 납치돼 몸값이 걸린 인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또 “라오스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및 관련 모임에서 이 같은 방침을 발표할까 했으나 예의를 지켜 거론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에 반감을 드러내며 전임 정부가 고수했던 친미 외교 노선의 변화를 분명히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10일 두테르테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에서 귀국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는 미국의 팬이 아니다. 미국은 불간섭, 평화적인 분쟁 해결을 준수해야 한다”며 “재임 동안에 어느 나라의 간섭도 받지 않는 독립적 외교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9일 인도네시아에서 필리핀 교민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중국은 필리핀 마약중독자 재활센터 건설을 지원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법치만 요구한다”며 미국을 비꼬았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집권 후 3000여 명의 마약 용의자를 사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바른 방법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하라”고 촉구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에 반발하면서 5일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리는 라오스로 출발하기 전 “만일 마약 용의자 사살 문제를 내 면전에서 언급한다면 개××라고 욕을 해주겠다”고 막말을 했다. 이에 오바마가 6일로 예정됐던 양국 정상회담을 취소하자 두테르테는 자기 발언을 후회한다고 꼬리를 내렸고, 양국 대통령은 7일 라오스 현지에서 짧은 비공식 만남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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