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에 괜히 외투를 한 번 더 여미게 되던 2년 전 늦가을, 김모 씨 부부는 조심스레 서울가정법원 문을 두드렸다. 한평생 함께하기로 했던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적잖은 마음고생을 겪은 뒤였다. 더 이상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아내, 끝까지 이혼만은 원치 않았던 남편.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던 두 사람의 협의 이혼 과정 도중 계절은 여덟 번이 바뀌었고, 돌이 채 안 됐던 두 사람의 아기는 어느덧 세 살배기가 됐다.
“2014년 11월 이래 긴 시간 동안 소송절차를 진행하시느라 심히 고생하셨습니다.”
지난달 말 두 사람은 조금 ‘특별한’ 이혼 결정문을 받아들었다. 통상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로 끝나는 한 장짜리 결정문이 아니었다.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다며 질책하는 문구도 없었다. 그들의 이혼 과정을 7개월간 지켜봐온 판사가 보낸 일종의 ‘편지’였다.
서울가정법원 가사6단독 김지연 판사는 그들이 이혼 절차를 밟으며 만난 세 번째 판사였다. 김 판사는 “1심 절차가 이렇게 길어지게 돼 죄송합니다. 아기가 어리고 두 분이 젊으시다 보니 법원이 경솔하게 판단을 하기 어려워 좋은 조치를 강구하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음을 이해해 주십시오”라며 운을 뗐다.
김 판사는 “두 분은 비록 부부로서의 인연이 다하고 각자의 길을 가시더라도 여전히 아기에게 따뜻한 부모로 남아주실 것으로 보이고, 믿고 부탁드린다”며 “힘든 소송 중에 여행을 다니며 아기를 위해 노력해 주신 두 분의 마음씀씀이에 감사드린다”고 격려했다. “아기가 비록 어렸지만 행복한 기억이 틀림없이 아기를 지켜줄 것”이라며 향후에도 가족여행 때처럼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하는 말도 덧붙였다. 화해권고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소할 경우 절차를 안내하는 대목에도 배려가 묻어났다.
이제 사건의 향방은 두 사람에게 달려있다며 김 판사는 새 출발을 기원하면서 두 사람의 이별을 선언했다. 22개월 만에 찍힌 마침표였다. “아가와 두 분의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그간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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