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된 청와대 회동은 115분 내내 긴장감이 흘렀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안보 문제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경제 및 정치 현안으로 맞서면서 양보 없는 설전이 오갔다. 향후 정국 운영도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이날 배석자를 결정하는 과정부터 신경전이 팽팽했다. 청와대는 이날 회동에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배석한다고 통보했다. 일촉즉발의 북핵 위기에서 초당적인 협조를 요구하는 안보 회동 의미를 살리려는 취지였다.
그러자 추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생경제 영수회담을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제안해 이뤄진 회담”이라며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배석을 공개적으로 요구했고 결국 유 부총리도 뒤늦게 회동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추 대표에게 “동반자로 기대한다”고 인사를 건넸고, 추 대표는 “흔쾌히 회담 제의를 수용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이던 6일 추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영수회담을 먼저 제의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러면서 “추석을 앞두고 힘든 국민께 민생 열쇠를 드리면서 좋은 추석 선물을 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당초 제안한 ‘안보 회동’이 아닌 ‘민생 회동’임을 부각시켰다.
회담은 화기애애한 인사로 시작됐지만 박 대통령이 원탁에 앉은 뒤 “장관들의 보고를 먼저 듣자”고 제안하면서 순간 냉랭한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국민의당 박 위원장이 “장관들은 국회에서 자주 뵐 수 있으니 여야 대표들이 먼저 말하고 싶다”고 중재에 나섰고 추 대표가 15분, 박 위원장이 14분 각각 준비한 발언을 이어갔다. 야당 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박 대통령은 갑자기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찬성하시냐, 반대하시냐”고 직접 물으면서 잠시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고 한다. 추 대표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이 다그치듯이 물었다”고 했다.
이날 회동은 예정된 시간보다 25분이나 더 진행됐음에도 사드 배치를 두고는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사드 문제에 대한 공동 발표문을 채택하려던 시도도 불발됐다. 이 대표가 “두 야당 대표가 사실상 사드 반대로 결론이 나면 많은 국민들이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재차 요구했지만 야당 대표들은 “강요된 합의”라며 거부했다. 박 대통령은 예정됐던 의제에 대한 각자의 얘기가 끝나자 ‘다른 일정’을 이유로 먼저 자리를 떴다.
이날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여성 대통령과 첫 여성 당수의 만남에도 관심이 쏠렸다. 박 대통령과 추 대표는 나란히 파란색 계열 바지 정장을 입어 눈길을 끌었다. 평소 전투복으로 불리는 박 대통령의 남색 정장은 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때 입었던 옷이기도 하다. 두 여성 지도자는 차분히 대화를 이어갔지만 현안을 두고 한 치 양보도 없었다고 한 배석자는 전했다. 이 대표는 붉은색 넥타이, 박 위원장은 초록색 넥타이, 추 대표는 파란색 재킷 등 당 색깔을 반영한 의상을 선택했다.
회동에 대한 두 야당의 평가는 미묘하게 엇갈렸다. 추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께서 많은 관료에게 둘러싸여 계셔서 민생이나 이런 위기감 또는 절박함, 여기에 대한 현실 인식이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나라 경제 방향, 특히 소득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향 전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자주 만나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더민주당 윤관석 대변인은 “한마디로 소통의 시대 만사불통이었다. 박 대통령의 안보교육 강의에 가까웠다”고 혹평했다. 발언 자료를 준비해 갔던 박 위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도 당신의 생각을 충분히 설명했고, 우리도(야당 대표들도) 의견을 다 얘기했기 때문에 당장에 모든 것이 합치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대화였다”고 평가했다. 회동 내내 박 대통령을 측면 지원했던 이 대표는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분위기 속에서 잘 진행됐다”며 “북핵과 관련해 참석자 모두 강한 톤으로 반대하고 규탄한 부분이 최고의 성과”라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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