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도발’ 끝장 내려는 朴대통령… ‘核도박’에 사활 건 김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4일 03시 00분


[北 5차 핵실험 이후]남북 정상 ‘핵 대결’ 변수는
朴대통령 ‘승부사 리더십’ 험난
지뢰도발 당시만 해도 주도권 기대
미사일-핵실험 이후 “통제불능” 사드배치 등 여론 분열에 곤혹

김정은, 지금은 웃지만…
‘핵으로 체제 유지’ 한발씩 진전… 美-中 국내정치 몰입, 시간 벌어
조여오는 경제제재가 ‘시한폭탄’

남북한이 초유의 핵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 중요한 축의 하나는 양측 지도자가 벌이는 전략적 대결이다. 계속되는 대북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더 강력한 수단으로 북한의 셈법을 바꿔 놓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과연 박 대통령은 5차 핵실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등 도발에 잇달아 성공한 김정은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 박 대통령의 ‘끝장 리더십’

朴대통령 “내부 분열땐 방어체계 무의미”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13일 국무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미사일을 한 발이라도 발사하면 북한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각오로 고도의 응징 태세를 유지하라”고 당부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朴대통령 “내부 분열땐 방어체계 무의미”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13일 국무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미사일을 한 발이라도 발사하면 북한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각오로 고도의 응징 태세를 유지하라”고 당부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통령은 남북 현안에서 ‘승부사 리더십’을 보여 왔다. 지난해 8월 북한의 ‘지뢰 도발’ 당시 북한 포격 위협에도 대북 확성기 방송을 강행했고 남북 고위급 협상도 박 대통령이 직접 “유감 표명은 받아야 한다”고 지휘해 관철했다. 이때만 해도 박 대통령이 남북 관계의 주도권을 잡는 듯했지만 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박 대통령이 호칭 없이 ‘김정은’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국내 반발을 무릅쓰고 개성공단 철수도 단행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9일 5차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 놀라거나 분노하기보다 “아이고”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중국 러시아가 포함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북한의 도발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한 다음 날 핵실험을 하는 것을 보며 박 대통령이 ‘이제는 도저히 어쩔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김정은에 대해 “정신 상태는 통제 불능” 등 원색적인 비난을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3일 국무회의에서는 급기야 북한이 핵 도발에 나서면 북한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각오로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끝장’이라는 단어에서 승부사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공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김정은 ‘통제 불능’인가 ‘이성적’인가

김정은 농장 시찰… 핵실험후 첫 공개 활동 북한 노동신문은 13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인민군 810부대 산하 농장을 방문해 현장지도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은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실험 등 도발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김정은 농장 시찰… 핵실험후 첫 공개 활동 북한 노동신문은 13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인민군 810부대 산하 농장을 방문해 현장지도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은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실험 등 도발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박 대통령은 ‘통제 불능’ ‘광적인 무모함’을 지적했지만 김정은은 단기 성과를 즐기고 있다. 김정은의 당면 목표는 체제 유지와 경제 발전. 노동당 규약에 명기한 ‘핵·경제 병진 노선’이 이를 대변한다. 핵으로 체제 안전을 도모하고 경제를 병행 발전시키겠다는 접근법이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듯 보인다.

주요국들이 일제히 정치 시즌에 들어간 상황도 김정은에게 호재다. 11월과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과 한국, 내년 제19기 당대회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집권 2기를 앞둔 중국 모두 대외 정책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

김정은을 미국 프로농구 선수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을 불러 공연을 시키는 철부지로만 볼 수는 없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북한의 핵 개발 행보가 체제의 생존을 위한 이성적 접근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경제도 2011∼2014년 평균 1.05%(한국은행 기준) 성장률을 기록했다. 아주 망쳐 놓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대 김병연 교수에 따르면 북한의 무역의존가 52.6%에 달해 국제사회의 제재가 지속되면 제대로 경제를 운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 ‘의지의 대결’이 승부처

12일 여야 3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말한 것처럼 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 개발 문제를 “의지의 대결”로 여기고 있다. 핵을 개발하겠다는 북한과 이를 막겠다는 한국·국제사회 중 의지가 더 강한 쪽이 이길 것이라는 게 박 대통령의 시각이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원하는 것과 달리 내부적으로 한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수층조차 전술핵 재배치, 핵잠수함 건조 등 대안이 사분오열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도발을 비난하면서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거부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핵 개발 위협이 고도화되는데도 우리 내부가 분열돼 힘을 모으지 못한다면 어떤 방어 체계도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대북 압박 공조나 정보 교류도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아사히신문은 13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앞두고 “한미가 북한에 외과수술적인 방법을 취하려 해 거기에 대항하기 위한 핵실험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중국 측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핵실험을 중국에만 사전 통보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숭호 shcho@donga.com·장택동 기자 / 도쿄=서영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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