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음 달 2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된다. 예상보다 빠른 그의 ‘조기 등판’은 갤럭시 노트7 배터리 결함으로 전량 리콜을 결정한 위기 상황에서 나왔다. 이건희 회장의 장기 와병으로 경영 공백이 길어지는 것을 우려한 해외 기관투자가 및 사외이사들의 요청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회장직 승계나 대표이사직 선임은 남았지만 사실상 ‘이재용 체제’ 출범으로 볼 수 있다.
등기이사로 등재되면 이 부회장은 경영 전면에 나서 법적 책임을 포함한 모든 의사결정을 책임지게 된다. 상당수 대기업 총수 일가가 법적 책임 외에도 연봉 5억 원 이상 등기이사의 연봉 공개 같은 부담 때문에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면서도 등기이사 등재를 꺼리는 게 현실이다. 창업자의 3세인 이 부회장이 기업의 위기 국면에서 등기이사를 맡는 것은 권한과 책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도 2009년 미국에서 차량 급발진에 따른 대량 리콜로 위기를 맞자 창업자의 손자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 위기를 타개한 적이 있다.
‘이재용 삼성’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갤럭시 노트7 리콜 파문의 조기 수습이다. 이번 위기를 잘 해결한다면 신뢰를 얻겠지만 리스크 관리에 실패하면 어렵게 쌓아 올린 프리미엄 브랜드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할 위험이 있다.
‘제조업 강자(强者)’라는 기존 강점을 지키면서도 유망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 성공시켜야 하는 것도 이 부회장의 책무다. 삼성은 화학과 방산 분야 계열사 매각에 이어 그제 삼성전자 프린터 부문을 미국 HP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선제적 사업구조 조정으로 ‘실탄’을 마련한 ‘이재용 삼성’이 자동차부품 사업과 바이오 사업 같은 새로운 사업에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에 삼성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 부회장은 갤럭시 노트7 결함 파문을 계기로 삼성 안에 관료주의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까지 점검하고 개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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