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의 다른 경제]김종인-정운찬은 틀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4일 03시 00분


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정부는 1999년 개방형 직위 제도를 도입했다. 1∼3급 고위직에 민간인을 임명해 관료사회의 전문성을 높이려는 취지였다. 올 7월 말 현재 전체 개방형 직위 441개 가운데 민간인은 152개(34.5%) 보직에 임명됐다. 개방형 직위 3개 중 2개는 다시 공무원 몫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관료집단이 기득권을 쉽게 놓을 리 없다는 17년 전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기득권 못 깨는 경제민주화

보상이 적절한지 판별하는 기준은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다. 골프 여제 박인비 선수가 연간 수십억, 수백억 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비난받지 않는 것은 치열한 경쟁을 거친 대가여서다. 반면 권력을 휘두르는 관료가 낙하산으로 금전적 보상까지 받는 모순을 인정하는 국민은 없다. 관료들이 스스로 친 울타리 안에서 실제 들인 노력 이상의 보상, ‘지대(Rent)’라고 부르는 불로소득을 누린다는 것이다.

‘공짜 점심’ 선호 양상은 관료사회뿐 아니라 의사 변호사 회계사 같은 많이 알려진 기득권 집단과 대기업 중소기업 중산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마트에 입점하려면 마트 관계자의 사돈의 팔촌이라도 연줄이 닿아야 하는 부조리가 판을 친 지 오래다.

정부가 만든 보호막 뒤에 숨은 중소기업은 또 어떤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특혜를 받은 회사는 살아남지만 정작 일자리는 늘지 않고 경영진만 과실을 누린다. 사회적 약자인 개인을 돌보는 건 국가의 의무다. 그러나 경쟁력 없는 기업을 보호하는 건 시장경제를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취업난 시대를 맞아 회사원들도 기득권 집단으로 바뀌고 있다. 한 저명한 경제학자가 은행에서 강연을 하다가 “은행원도 공짜 점심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만약 당신이 사표를 냈는데 은행이 만류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직장에서 편하게 지내면서 너무 많이 누렸다는 뜻이다.” 우리가 ‘좋은 회사’, ‘신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기업에 이런 임직원이 적지 않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추구하는 경제민주화가 재벌만을 타깃으로 한다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수많은 기득권 세력은 손바닥 위 모래처럼 빠져나간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동반성장은 중소기업 분야에 또 다른 기득권을 용인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렇다고 모호한 경제활성화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과장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기득권을 깨려면 타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재벌가 3세, 4세가 누리는 과도한 보상체계는 개혁해야 하지만 경쟁을 통한 기업 활동은 장려돼야 한다. 한국이 이성이 마비된 거대한 ‘르상티망(분노) 사회’로 치닫는다면, 그래서 모든 문제를 양극화로 뭉뚱그리고 기득권 개혁을 단지 부자의 돈을 뺏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법인세 증세 논란 수준의 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동반성장, 경쟁 해칠 우려

박근혜 정부가 2014년 초 만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신선한 대목은 ‘사회 곳곳에 방치된 비정상을 통한 경제행위, 즉 지대 추구(Rent seeking)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 하나였다. 진단을 잘하고도 부당한 기득권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가지치기만 하다가 시간을 흘려보냈다. 올해 남은 기간 울타리 뒤에 안주하며 과한 이득을 누리는 분야별 기득권 세력을 가려내야 한다. 그래서 임기 마지막 해 ‘공짜 점심’ 척결 운동을 시작한다면 죽어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경제혁신 3개년 계획#기득권#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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