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드라마 ‘셜록’을 통해 명성을 리모델링한 작가 아서 코넌 도일(1859∼1930). 그의 말년 행보는 ‘팩트 분석의 천재’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인물의 선택이라 믿기 어렵다. 제1차 세계대전 도중 아들과 남동생을 잃은 도일은 소설 집필을 멈추고 심령술 연구에 매달렸다.
세심한 관찰로 눈에 보이는 모든 정보의 조각을 모아 필요한 사실을 유추하던 홈스가 이 책을 읽는다면 썩 달가워하지 않을 거다. 저자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simonparke.com)에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뒤 20년간 성공회 사제로, 3년간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했다”고 밝혔다.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며 고흐, 예수, 모차르트, 톨스토이 등 역사적 인물과의 ‘대화’라 제목 붙인 책들을 내놓았다.
제목은 ‘대화’지만 대화체의 창작물이다. 유명 인물의 발언이라 전해지는 기록을 조합해 인터뷰 형식으로 묶은 것. “70세의 도일을 그의 자택에서 사흘간 만났다”는 이 책 서문의 문장은 지은이가 제시한 허구의 가정이다. 하지만 사실과 창작의 경계가 명료하지 않은 탓에 도일의 발언과 저자의 창작을 구분하기 어렵다.
“가족, 기사 작위, 전 재산, 소설가로서의 명성 같은 건 심령술에 비하면 하수구 진창이다. 심령술 덕에 인생의 모든 면을 납득했다.”
심령술에 천착한 무렵의 발언만 추린 탓에 줄곧 이런 요지다. 정말로 도일이 남긴 말이든 아니든 홈스의 팬들에게 굳이 확인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좋아했던 배우의 예상 밖 모습을 목격했던 몇몇 인터뷰의 기억과 비슷한 뒷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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