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작자인 이앤엠필름 김동현 대표는 요즘 새 영화 ‘한라장사―요요’의 제작 준비에 한창이다. 2006년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 이후 씨름을 소재로 한 두 번째 상업영화다. 하지만 천하장사 마돈나가 씨름을 통해 성소수자의 고민을 다뤘기 때문에 민속씨름을 전면에 내세운 건 한라장사―요요가 처음인 셈이다. ○ 씨름의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
김 대표가 한라장사―요요의 시나리오를 처음 구상한 건 2006년 경남 마산시(현 창원시)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지인의 빈소에서다. 김 대표의 지인은 한때 명문 팀이었던 대구 청구씨름단 소속 선수였지만 자금난으로 팀이 해체된 뒤 경제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선수를 그만둔 사람들이 그나마 국밥집이라도 차릴 수 있으면 잘나가는 거죠. 약장수, 막노동에 연예인 매니저, 어깨(건달)까지 하고 다닙니다. 성질은 순한데 덩치는 크니까요.”
김 대표의 시나리오는 한동안 방향을 잡지 못하고 표류하다가 2012년 씨름진흥법이 제정되면서 급물살을 타고 마무리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올 11월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모티프가 됐던 현실과는 달리 ‘해피 엔딩’으로 영화를 구상했다는 김 대표는 “영화가 흥행하면 중국 베이징(北京)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사회를 열어 세계적으로 씨름을 알리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영화계뿐 아니라 문화계와 씨름계, 국회 등에서도 민속씨름을 소생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의 지원을 받아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지정되고 택견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동안 씨름만 답보 상태에 수십 년간 머물러 있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국회와 정부는 늦게나마 법·제도 정비에 나섰다. 2012년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발의한 씨름진흥법이 제정돼 ‘씨름의 날’(음력 5월 5일 단오)이 만들어졌고 정부가 씨름을 지원할 근거가 마련됐다. 그 덕분에 문체부의 지원 예산은 2012년 25억 원에서 지난해 38억 원, 올해 41억 원으로 늘어났다. 씨름의 국제화를 위한 걸음도 시작됐다. 한국은 2013년부터 3년간 준비한 끝에 3월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 신청하는 데 성공했다. 2018년 예정된 심사까지는 약 2년이 남아 있다. 등재 신청 실무를 추진한 공성배 용인대 교수는 “비록 경제적인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등재에 성공하면 국제사회에 씨름을 알리기 위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구식’ 이미지 깨고 내부 혁신 필요
씨름계 안팎에서는 무엇보다 신임 회장을 갓 뽑은 통합씨름협회가 이번엔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다.
앞서 대한씨름협회는 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분신 소동’까지 일어나는 등 각종 분쟁과 재정 악화의 여파로 올 1월 대한체육회로부터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3월 국민생활체육전국씨름연합회와 통합하면서 관리단체 지정에서 해제되긴 했지만 협회의 내홍은 계속됐다. 2016 청주무예마스터십대회에서는 씨름 종목이 빠지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 때문에 8월 새로 선출된 박팔용 회장 체제가 민속씨름의 재도약을 이뤄주길 바라는 씨름인들이 많다. 한때 협회 개혁을 추진했던 ‘원조 골리앗’ 이봉걸은 “박 회장은 씨름인 출신인 만큼 다른 무엇보다 씨름을 우선시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물론 씨름계의 이런 노력들이 왕년의 전성기를 다시 불러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장에서는 씨름진흥법이 시행된 지 5년째지만 “전혀 효과를 체감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씨름에는 미래가 없다”는 인식을 깨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외부 전문가를 적극 영입하고 자본력 확충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식’ 이미지를 탈피해야 국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황규연 현대코끼리씨름단 감독은 “기업들은 현대적이고 스마트한 이미지를 추구하는데 언제까지나 ‘전통’만 강조할 수는 없다”며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선수들을 발굴하고 자기홍보(PR) 교육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현 용인대 교수는 “씨름은 살을 맞대는 스포츠인 데다 상대를 가격하지 않아 신사적”이라며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아이들의 인성교육에도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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