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단체여행을 가면 흔히 일어나는 풍경이 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누군가 “○시까지 내 방으로 모이시죠”라고 초대해, 삼삼오오 호텔방에 모여 술 한잔 나누는 일이다. 필자도 여러 번 읊어본 대사이지만 어느 날 문득 이 말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내 방’, 즉 ‘내 소유’의 방은 없다. 내가 묵는 기간 동안만 잠시 대가를 치르고 빌린 것일 뿐이다.
이 논리로 가만히 생각해 보자. 집에 있는 내 방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 집에 사는 동안만 내 방일 뿐 내 소유가 될 수 없다. 최대로 기한을 확장한다 해도 내가 그 방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살아 있는 동안뿐이다. 그렇다면 하룻밤을 묵는 호텔과 다를 게 무엇인가. 사용하는 시간이 조금 더 길 뿐이다.
세상에는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 차라는 것도 ‘내’ 옷이라는 것도 ‘내’ 책이라는 것도 없다. 단지 사물과의 관계만이 있을 뿐. 모든 사물은 나와 인연이 닿아서 한시적 관계를 맺다가 언젠가는 떠난다. “우리는 땅이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안다”고 했던 아메리칸 인디언 시애틀 추장(1786∼1866)의 말은 무소유의 정신을 잘 대변해 준다.
모든 문제는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물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그 진리를 거부하고 굳이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짓은, 뜬구름을 그물로 낚아채고 하늘의 별을 따오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 것으로 삼으려는 욕심 대신 사물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고 적절하게 그 사물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돈을 주고 산 물건이든, 누구에게서 받은 물건이든 그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나와 인연을 맺은 시간 동안 감사히 그것을 사용할 뿐이다.
무소유는 빈털터리가 돼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용하는 물건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고 또 그것을 소유가 아닌 관계의 개념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훌륭한 무소유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내 것’이 없을 때, 세상은 모두 그의 것이 된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될 것”이라는 법정 스님(1932∼2010)의 말이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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