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은교]그날, 가장 먼저 전화 건 사람의 소중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9일 03시 00분


강은교 시인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강은교 시인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그날, 가장 먼저 전화벨을 울린 이는 누구였는가. 그러니까 지진이 가만히 앉아 있는 나의 집이며 나의 얼굴을 마구 흔들던 날 저녁에 말이다.

정말 정신이 없었다. “어어∼” 하고 있는 사이 내가 앉아 있는 자리는 마치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신발을 들고 스마트폰을 마구 찾았다. 번호를 마구 눌렀다. 단 하나의 번호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정신없이 그 번호 숫자를 눌렀으나, 그러나 전화기에서 들린 소리는 “통화량이 많아, ∼”였다. 불통이었다. 그래도 마구 번호를 다시 눌렀다. 누르고 다시 누르고, 또다시 누르고. 그러다 흔들림이 멈추었다. 그 순간 통화음이 따르릉 울렸다.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아. 계속 전화했는데….” 딸이었다. “나도 전화를 걸고 있었어. 왜 그렇게 안 받니?” 전화가 뚝 끊어졌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다시 울렸다. “언니! 별일 없어? 부산은 굉장하다며?” 서울에 사는 동생이었다. 우리는 한참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아마 이번에 모두 가족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아파트에 떨어져 살아도, 끈기가 없어진 밥알들처럼 뿔뿔이 흩어져 서로 관심 없는 듯이 보여도 가족 해체 운운하는 목소리, 매일 귓전을 울려도, 아, 마지막 살아있는 힘은 가족이구나 하는 것을. 마지막까지 붙잡고 싶은 목소리는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의 목소리라는 것을, 그 목소리들이 빙빙 둘러친 비단 목도리들이라는 것을. 옛날에는 서로의 안부를 물을 필요도 없이 오순도순 한집에 모여 살았으나 요즘 그런 행운을 가진 사람은 몇이나 될까. 딸도 아들도 다른 도시에서, 다른 집에서, 형제들도 다른 도시에서 다른 집에서 남처럼 되어 산다. 서로 사느라고 바쁘지, 하고 짐짓 이해하며.

가족 간의 유대가 어느새 끊어지고 있다. 돈 많은 사람은 돈 많은 대로, 돈 없는 사람은 돈 없는 대로 서로를 멀리 쳐다보며, 때로는 그 누구보다 미워하며, 또는 서러워하며 산다. 뉴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홀몸노인은 노인 10명 중 7명이며, 대개 빈곤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가난한 홀몸노인들도 가장 만족도가 낮은 항목은 다들 “자녀와의 관계”라고 한다. 경제 문제도,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가족들과의 관계의 끊어짐.

그런데 나에게는 명절에 가볼 고향이 없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나의 어머니는 당시 경성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느라 가족을 모르시던 아버지를 찾아 과감히 고향을 떠나셨다. 얼른 돌아오실 생각으로 ‘혼자 밥 먹을 수 있는’ 다섯 살 딸은 할머니께 맡기신 채, 젖먹이인 나만 업고, ‘모개신’(짚신의 북한 사투리)이 닳아질까봐 가슴에 안고, 사람들이 보는 데서만 그것을 꺼내 신으시면서. 그런데 그만 휴전선이 막혀 버리는 바람에 어찌어찌 만난 아버지와 서울살림을 마치 신접살림처럼 시작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말해놓고 보니, 참, 흔한 이야기다.

그래도 모개신, 하니까 지진 나던 날의 전화벨 소리와 신발을 짝짝이로 들고 뛰던 게 새삼 생각난다. 말하자면 가족은 가장 편한 신발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것이 없으면 길을 잘 못 걸을 수밖에 없는 그런 신발. 품에 품고 강을 건너 낯선 길 속으로 걷게 하는 모개신….

이 세상의 길은 모두 처음 가는 길이다. 낯선 길이다. 그러나 가족은 그 모든 처음 가는 길의 신발이다. 만 리 험한 길도 가게 하는, 또는 그 어떤 곳을 향하여 마음대로 날게 하는 카펫. 아아아, 가족이여, 불멸하라. 영원히 아름다운 우리의 ‘모개신’이 되어라.
 
강은교 시인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명절#가족#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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