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다. 그러나 둘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야당을 택했고, 김무성 전 대표는 비박(비박근혜) 진영의 구심점이 됐다.
묘한 인연을 가진 두 여야 전 대표는 현재는 당내 비주류에 속하지만 내년 대선의 주요 플레이어에 속한다. 19일 국회 사랑재에서 만난 두 사람은 1시간 46분 대담 중 경제 문제에 40분 넘게 할애했다. 두 사람은 경제민주화와 소득 격차 해소가 시급한 현안이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각론에서는 이견을 보였다. ○ 격차 해소 해법 놓고 이견
―내년 대선을 관통할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김종인(이하 인)=나날이 심해지는 격차를 어떻게 좁힐 것이냐이다. 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가 미국 다음으로 소득격차가 심하다. 미국은 중산층이 무너지자 극단적 발언을 하는 사람이 득세하는 시대가 오지 않았는가. 우리나라도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김무성(이하 성)=우리 사회가 발전의 한계에 도달했다. 양극화 현상과 맞물려 미래와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됐다. ‘희망의 사다리’가 없어지는 데서 오는 좌절이 길어지면 분노가 되고, 분노가 길어지면 폭발한다. 총선도 작은 폭발 중 하나라고 본다. 더 큰 폭발이 올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인=우리 상황이 지나칠 정도로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는 식으로 가면서 그쪽(노동) 세력은 점점 약화된다. 소득은 노동시장에서 1차적으로 분배되는데 (노동이) 취약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1차 소득 분배 불균형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성=전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소득 격차와 관련해서 전체 근로자의 3.5%밖에 안 되고, 전체 임금소득자 중 상위 10% 고소득자들인 민노총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을) 반대하고, 더민주당은 이들에게 발목 잡혀 있다. 절대 다수 근로자를 보호하는 길로 가는 게 노동개혁이라고 보는데 (야당은) 임금 격차 해소하는 게 노동개혁이라고 본다. ―소득 격차 해소의 방법론은 무엇인가. ▽인=쉽지 않다. 1974년 1월 정부는 긴급조치 3호로 재정명령을 발동해 그 전해 국회에서 1만8000원으로 어렵게 2000원 올린 면세점(點)을 5만 원으로 인상시켜 버렸다. 1차 오일쇼크로 경제 상황이 어렵고 사회적 불안감이 조성되자 이 같은 과격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민주화된 지금 그런 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 민주적인 개혁을 일방(노동)이 아니라 타방(자본)도 같이 해줘야 한다. 경제의 룰을 바꿔야 한다. ▽성=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46세 때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해서 대통령이 됐다. 나도 국정의 90%는 경제라고 말해 왔지만, (격차 해소를 위해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다. 정치의 룰을 바꿔야 한다. ▽인=이데올로기적으로 진보 대 보수 같은 어프로치로는 해결이 안 된다. 양극화란 말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정치권에서는 대안이 나온 게 없다. 1993년 시작된 일본의 불황이 20년 넘었는데 우리도 그 진입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성=일본은 고령화사회 진입할 때 노인들 주머니에 돈이 있었고 가계저축률이 높았다. 우리는 노인들은 돈이 없고, 가계부채는 심각하다. 우리는 (장기 불황에) 빠지면 헤어날 가능성이 없다.
○ 증세와 경제민주화 ―증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증세는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부정부패가 없어야 한다. 지방의 낭비 요인이 너무 많다. 사회간접자본(SOC) 과잉 시대다. 이걸 다 줄여야 한다. 조세감면 특혜를 대폭 줄여도 견딜 수 있다. ▽인=우리의 경직된 세제(稅制)는 소득재분배 기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소득세를 납세 인구의 50%밖에 안 낸다. 세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걷고 세출을 어떻게 편성하느냐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를 평가해 달라. ▽인=과거 정권에 비해 경제정책이 크게 향상된 게 없고 빈부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성=청와대에서 발표한 걸 봤는데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은 20개 중 13개 입법을 완료했다. 그 나름대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인=(관련) 법을 많이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고 하나라도 제대로 집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하는가. ▽인=(지난 대선에서) 그렇게 생각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이 자기 능력대로 하되 정부가 정한 룰은 지키라는 것이다. ▽성=소용이 없는 게 아니고 (경제민주화를) 하긴 했는데 김종인 전 대표 욕심에 차지 않았다. 다만 재벌이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상호출자하고, 연고자본주의가 커가는 건 막아야 한다. ○ 북핵 해결 위한 중국 역할 강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논란이다. ▽성=핵무기에 대한 방어체계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정부의 무능도 한몫했다. 국방부는 당당하게 방어체계 만든다고 얘기는 못 하고 계속 (사드 배치를) 부인, 부정했다. 또 첨단 무기체계를 어디 배치하는지 왜 공개하나. ▽인=한미 안보동맹에 훼손이 가는 얘기를 우리가 해선 안 된다. 미군 사령관이 주둔군 생명 지키기 위해 갖다 놓은 것을 우리가 거부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도 못한다. 미 전 합참의장이 (북한에) 선제공격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걱정스럽다. (북핵이 미국) 본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미국이 대한민국을 보호할 의무도 느끼지 않게 된다. ―북핵 문제의 해법은 무엇인가. ▽성=북한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중국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은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고 빠른 시일 내의 한국 주도 통일을 원하지도 않는 것 같다. 누군가 북이 핵미사일을 쏘면 이에 대응해 북한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잘못된 발언이다. 쏘고 나면 게임은 끝이다. 사전에 발사를 막을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 국방비를 증액하고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인=북핵 문제는 우리가 얘기한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중국은 한반도를 예전에 자기들에게 조공 바치던 나라로 생각한다. 말은 한반도 통일을 지지한다고 얘기하지만 분단 상태가 가장 유리하다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을 비핵화시키겠다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북한이 위협이 된다고 보면 방어체계를 갖추는 것이 정상적이다. ―일각에서는 대북특사나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 해법이라고 한다. ▽성=지금 대화가 되겠나. 북한은 핵무기가 완성될 때까지는 계속 가게 돼 있다. (평화협정은) 입에 발린 소리다. 실질적으로 그렇게 안 된다. ▽인=6자회담으로도 안 되는데…. 대북특사로는 문제를 풀지 못한다. 미국이 북한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미국은 자기네 국익을 위해 행동한다.
● 김무성 “5년 단임은 王 뽑는 제도… 권력 나누는 연정 필요”
개헌-정치개혁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는 19일 동아일보 대담 인터뷰에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든 4·13총선 결과가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라는 데 공감했다. 다만 진단은 달랐다. 김무성 전 대표는 인사 실패를, 김종인 전 대표는 공약 불이행을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 박근혜 정부 평가 놓고 이견 ―박근혜 정부 4년을 평가한다면…. ▽인=내가 따로 평가할 필요가 없다. 4·13총선에서 이미 국민들이 평가를 내렸다. 정직함이 중요하다.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등을 약속했는데, 국민이 느끼기에 이행된 게 보이지 않자 거기에 대한 평가를 내린 것이다. 빈부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외교안보에서도 평가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성=집권 초기 기대가 높았는데, 중반 이후 (국민이) 실망을 많이 한 것 같다. 결국 인사 실패다. 국정 운영에 있어 그야말로 각 분야에서 ‘베스트 초이스’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 정권에서 그걸 실패했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렇고, 중요한 이슈가 생기면 부처 장관들이 나와 마이크를 잡아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왜 (장관들이) 주눅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정치를 하는 우리도 부처 장관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박근혜 정부가 성과를 내지 못한 데는 국회 책임도 있지 않나. ▽인=국회선진화법으로 야당이 반대하면 (법안이) 통과될 수 없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 제도는 새누리당이 만든 거다. 이런 제도를 만들었으면 이에 합당하게 야당에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자세를 취하니 야당도 극한의 반대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한다. ▽성=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야당도 (선진화법으로) 엄청난 무기를 가졌으면 그에 걸맞게 여당이 양보할 수 있는 선을 제시해야 한다. 여당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걸 제시하면 어떻게 하나. ―선진화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나. ▽성=(선진화법을 통과시킨)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날 의원총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면) 나라 망한다. 식물대통령 만드는 길’이라고 반대했다. 자업자득이다. 선진화법은 어느 당이 정권을 잡든 반드시 바꿔야 한다. ▽인=선진화법은 누구도 다시 고치자고 못할 거다. 선진화법이 유지되면 정부도 합당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정부는 선진화법이 있으면 12월 2일 예산이 자동 통과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여당이 다수당일 때 가능하다. 야당이 (예산안을) 부결시키면 그만이다. 다만 야당도 대의를 위해 어떤 게 중요한지 생각해야 한다. 야당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 (야당 내 강경파를) 극복해야 한다. ○ ‘내각제 요소’ 가미한 개헌에 한목소리 ―두 분 모두 개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인=이제 혼자서 자기 멋대로 나라를 끌고 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 균열을 빨리 치유하지 않으면 경제도, 통일도 어렵게 된다. 2018년이면 정부 탄생 70주년이다. 인간도 70대가 되면 늙어서 쇠약해진다. 활력을 얻으려면 골격을 바꿔야 한다. 권력구조나 경제 운용 방식을 새롭게 수용하지 않으면 나라 장래가 걱정된다. 수직적 조직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는 개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치권이 정신을 못 차리면 정치권 자체가 설 땅이 없어질 것이다. ▽성=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아무것도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역사의 죄인이 된 심정이다. 기형적 국회를 스스로 고발하고 싶다. 여야의 극한 대립은 승자독식의 권력 구조 때문이다. 현재 대통령 선거는 민주주의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왕을 뽑는 제도다. 승자는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생각하고, 패자는 망했다고 생각하니 바로 불복 선언을 하는 거다. 야당은 현 정권이 망해야 (정권 교체의) 기회가 오니 반대만 한다. 사람들은 보수 정권 10년이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때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의 정권 교체다. 모든 게 단절됐다. ―개헌을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 ▽인=일단 내각제를 통해 앞으로 2년간 연정을 하면 21대 국회에서도 연정을 계속 할 수밖에 없다. ▽성=내각제 요소를 가미한 연정이 필요하다. (양당의 특정 계파) 패권주의는 권력을 (자기들끼리) 나눠 먹으려는 것으로 결국 부정부패로 이어진다. 패권주의는 반드시 배격돼야 한다. ―하지만 개헌 가능성에 회의적 시각이 많다. ▽인=개헌추진 의원모임에 185명이 찬성했다. 20명만 더 모으면 (전체 의원의) 3분의 2가 넘는다. 지금까지 정치권이 자발적으로 개헌을 추진한 적이 없다. (200명이 넘으면) 개헌특위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성=정치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개헌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이기 때문에 개헌의 주체가 돼야 한다. 국민 여론이 잘 형성되면 박 대통령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 ‘제3지대론’에는 말 아껴 ―개헌이 정계 개편을 위한 도구라는 주장도 있다. ▽인=개헌을 하면 정계 개편을 할 필요가 없다. (여야 간)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정권이 탄생하는데 정계 개편을 왜 하나. ▽성=그렇다. 권력을 나눠 갖고, 연정이 정착되면 정계 개편 얘기가 오히려 들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제3지대에서 양당의 비주류가 뭉칠 수 있다는 관측이 계속 나온다.
▽인=제3지대 얘기를 하는데, 양쪽 당이 움직이면(양쪽 당 비주류 세력이 합치면) 상당히 (대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당은 보다 다양한 색채가 같이 섞여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도 제대로 된다. 더민주당은 지도부 자체가 친노(친노무현) 친문(친문재인)으로 됐다. 특정 세력이 권력을 쟁취해야겠다는 식의 권력구조는 만들어지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예가 없다. ▽성=패권주의자들이 왜 그러겠느냐. 권력을 독점하려는 세력들이 권력을 향유하고 나눠 먹으려는 거다. 결국 부정부패다. 인간의 탐욕이 그렇게 흐를 수밖에 없다. 패권주의는 반드시 배격돼야 한다.
김무성 전 대표는 ‘제3지대론’에 즉답을 피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두 분의 생각이 비슷한데, 굳이 여야로 갈라져 있을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종인 전 대표는 “원래 그렇게 (여야가) 생겨났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김무성 전 대표는 “대화를 더 해봐야 (생각이 같은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이재명 egija@donga.com·한상준 기자 민동용 mindy@donga.com·강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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