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37>환희의 풍경, 축복의 선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0일 03시 00분


빈센트 반 고흐 ‘꽃이 핀 아몬드 나무’
빈센트 반 고흐 ‘꽃이 핀 아몬드 나무’
197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화가의 조카가 개관에 힘을 실어 주었지요. 물려받은 삼촌 그림을 미술관에 기증했거든요.

화가는 서른일곱 해 남루한 삶을 마감하며 유일한 재산이었던 그림 대부분을 동생 테오에게 남겼습니다. 당연한 결정이었지요. 미술상이었던 동생은 세상이 외면했던 화가의 예술과 삶을 평생 신뢰와 사랑으로 지지했으니까요. 하지만 동생은 형의 죽음 6개월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화가의 유산은 동생 아내를 거쳐 조카에게 최종 상속되었지요.

가정을 이루고자 한 화가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화가는 결혼한 동생이 아버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누구보다 기뻐했습니다. 더군다나 갓 태어난 아이는 이름이 화가와 같았어요. 형처럼 강직하고 용기 있게 성장하여 살아가기를 바라는 동생의 마음이 담긴 이름이었지요. 조카의 탄생은 이처럼 화가에게 뜻깊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지상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했습니다. 조카가 태어난 1890년, 바로 그해 여름 삼촌이 세상을 떠났거든요. 자신과 이름이 같은 혈육이 생겼다는 그날의 환희를 ‘꽃이 핀 아몬드 나무’에 남긴 채 말이지요.

정신적 혼란기였던 말년, 화가는 과일 나무에 마음을 뺏겼습니다. 이 시기 아몬드 나무의 가지를 꺾어 유리컵에 담아 그리기도 했고, 과실수가 등장하는 풍경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화가는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꽃 피고 열매 맺는 나무를 보며 귀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벅찬 희망도 품었어요. 자신이 경험했던 가장 큰 풍요,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로 화가는 사랑하는 이들을 축복하고자 했지요. 푸른 하늘 아래 흰 꽃이 만개한 아몬드 나무가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군요.

어색한 첫 수업 시간, ‘당신의 어깨 뒤로 무지개 뜨기를’이란 구절이 들어있는 체로키 인디언의 축복의 기도를 함께 읽은 후 시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비난과 험담이 난무하는 시대, 누군가를 위한 덕담과 축복의 시면 좋겠노라 덧붙였지요. 좋은 학점과 안정된 삶을 소망하는 학생들이 병상에 있는 할아버지의 건강을 기원하는 시를 골라 뽑았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쓴 시를 읽는 학생의 떨림과 울먹임의 목소리가 노곤한 오후의 강의실을 특별한 아몬드 나무 숲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반 고흐 미술관#반 고흐#꽃이 핀 아몬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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