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약, 완벽주의는 독”… ‘창업 10戒’ 기업가정신 무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0일 03시 00분


[청년이 희망이다/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스탠퍼드대 출신이 창업과 경영을 맡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출신은 실무를 맡는다는 실리콘밸리의 속설을 깨고 싶다.”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1995년 마벨테크놀로지를 창업해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키운 판타스 수타르자 씨는 지난달 26일 UC버클리 창업지원 기관 ‘수타르자센터(SCET·Sutardja Center For Entrepreneurship and Technology)’ 사무실 이전 축하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UC버클리에서 1980년대 전자컴퓨터공학 학·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2005년 설립된 모교의 창업지원센터(CET)에 지난해 거액을 기부했다. 후배들을 위한 자선을 기려 학교는 그의 이름을 딴 새 이름을 지어 줬다.

SCET가 새 둥지를 튼 곳은 해마다 UC버클리와 스탠퍼드대 간의 치열한 미식축구 라이벌전이 펼쳐지는 것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메모리얼 스타디움’의 122호 사무실이다. 건설 후 93년 동안 두 학교 간의 자존심을 건 경쟁을 상징해 온 바로 그 경기장에서 UC버클리대가 학생 창업 분야의 본격적인 한판 승부 도전장을 낸 것이다.
○ 캠퍼스 전반에 ‘창업의 씨’ 뿌린다

SCET 교육과정 관리를 담당하는 필 카민스키 산업공학과 교수는 UC버클리 창업교육 목표를 “소수의 창업 엘리트가 아닌 캠퍼스 전반에 ‘창업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교육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공립대인 만큼 창업교육을 최대한 많은 학생에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SCET를 통해 1800여 명이 창업교육을 받았다. 스탠퍼드대의 한 학년 학부생 정원인 1700여 명을 웃도는 수준이다. 2007년부터 SCET를 거쳐 간 학생은 모두 6150명에 이른다. 공학계열 전공이 아닌 학생도 절반가량이나 된다. 다양한 학부 경력을 갖고 언제든지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창업 예비군들이 이곳에서 양성되고 있는 것이다.

결실도 속속 맺어지고 있다. 2015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최고 발명품 25선’에 든 ‘스마트 청진기’ 개발회사인 에코디바이스의 코너 랜즈러프 공동창업자가 대표적이다. 생명공학과 출신인 그는 SCET에서 교육을 받고 각각 학내 창업보육기관(인큐베이터)과 창업가속기관(액셀러레이터)인 ‘벤처랩’과 ‘스카이덱’을 거쳐 2013년 최첨단 정보기술(IT) 청진기 회사인 에코디바이스를 설립했다. 랜즈러프 공동창업자는 “창업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며 “창업에 우호적인 학내 분위기 덕에 알 수 없던 미래의 여정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 ‘창업 성공 10계’ 통해 기업가 마음가짐 심는다

UC버클리가 뿌리는 ‘창업의 씨’의 핵심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 있다. SCET 창립자인 이클락 시두 산업공학과 교수는 기자와 만나 “기업가정신이야말로 사람의 태도를 바꿔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마법 같은 요소”라며 “일반적인 창업교육은 효과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나 마케팅 기법 또는 프레젠테이션 기술 등 기술적 부분을 강조한다. 하지만 UC버클리는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기업가정신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버클리 교수법(Berkeley Method of Entrepreneurship)’으로 불리는 기업가정신 교육은 창업 베테랑의 경륜이 담긴 ‘창업 성공 10계’(표 참조)를 강조한다. ‘스타트업 10개 중 9개는 실패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헤쳐 나갈 요긴한 나침반인 셈이다. 수학 전공 4학년생인 사드 히라니 씨(22)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만 하면 10계를 적용해 창업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SCET는 학생들이 ‘10계’를 직접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4일 동안 다른 학생들과 팀을 꾸려 전문가 멘토링을 통해 창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창업캠프가 대표적이다. 실제 기업의 의뢰를 받아 많게는 1000만 원이 넘는 상금을 놓고 기술경연을 벌이는 ‘콜라이더(Collider)’ 이벤트도 수시로 열린다. UC버클리 경영학과 출신 케빈 추가 2006년 창업한 모바일 게임회사 ‘카밤’은 올해 학생들에게 인터넷 게임이 인기를 끌 차세대 ‘핫스팟’을 찾아달라며 1만5000달러(약 1700만 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 실리콘밸리 인맥 뚫는 절호의 기회

SCET는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해 유명 창업 베테랑을 ‘리처드 뉴턴 강의 시리즈’에 초청한다. 학생들은 강연을 들으면서 실리콘밸리 인맥과 사귀는 기회를 얻게 된다.

올 2월엔 유명 실리콘밸리 벤처투자 기업 앤드리선 호로위츠를 창립한 벤 호로위츠가 학생들을 만났다. 올가을엔 ‘아바타’ ‘어벤져스’ 등의 영화에 사용된 특수 효과로 아카데미 과학기술상을 수상한 크리스 브레글러 전 뉴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와 세계적 IT 전문지 ‘와이어드’ 창간인인 존 바텔 등 15명의 강의가 준비돼 있다.

히라니 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e메일 편지함엔 UC버클리에서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빅데이터 기반 스타트업 ‘소코스’를 창업한 비비엔 밍 박사와 주고받은 메시지가 빼곡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유명 인사들과 계속 연락하며 배울 뿐 아니라 개인적 친분을 쌓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버클리=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공대#창업#uc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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