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8월 12일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위쪽 사진 왼쪽)가 특별 성명을 통해 ‘1000만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북측에 제의하고 있다. 1970년 정부가 광복 25주년을 계기로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을 전격 제의한 지 1년 만이다. 하지만 실제 이산가족 상봉은 첫 제안이 나온 지 15년 만인 1985년에야 이뤄졌다. 서울에서 열린 첫 이산가족 상봉 때 북측의 아들이 남측의 어머니를 ‘오마니’라고 부르며 오열하고 있다(아래쪽 사진).
둘. 이산가족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다음 활동을 해 봅시다.
(1) EBS 지식채널e 중에서 2010년 6월 14일에 방송된 ‘아주 오래된 소원’을 시청해 봅시다.
(2) 통일부에서는 남북이산가족찾기의 일환으로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reunion.unikorea.go.kr)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이트에서 실시하고 있는 행사나 자료실의 자료를 살펴봅시다.
셋.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 중 매년 3800명 이상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2016년 2월에는 이산가족 중 사망자 비율이 생존자 비율을 추월했다고 합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이상가족 상봉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 생각 쪽지: 9월 21일은 무슨 날인가요?
9월 21일은 1985년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이 역사적인 첫 상봉을 이룬 날입니다.
남북한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사업은 1970년대 초 서울과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대한적십자사 측이 제의한 시범 사업의 하나였습니다. 1985년 광복 40돌을 맞이해 남북한 적십자사 책임자들이 교류를 제의했고 실무대표접촉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했습니다. 1985년 각기 151명으로 구성된 양측의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은 9월 20일 오전 동시에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고 3박 4일간의 일정을 보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의 이산가족 사망자가 생존자를 추월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이산가족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드리고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추석 명절에 몇 시간 동안 교통이 밀려도 고향에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수백, 수천 시간을 기다려도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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