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고문 내연녀 행세 돈 가로챈 공범 50대女 4년만에 붙잡혀
“金씨 시키는대로 해… 나도 속아”, 한때 환상의 콤비서 적대 관계로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인데 저도 속은 겁니다….”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수양딸 김숙향 씨(74)와 짜고 투자자들에게서 수십억 원을 받아 가로챈 윤모 씨(59·여)는 지난달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체포된 직후 이같이 항변했다. 약 4년을 꼬박 숨어 지내다 모습을 드러내 모든 책임을 김 씨에게 돌린 것이다. 반면 2012년 구속돼 지난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김 씨는 재판 과정에서 연신 “난 윤 씨만 믿고 투자자들과 계약한 것”이라며 윤 씨를 탓했다.
지금은 잘못을 떠넘기며 서로에게 배신당한 신세가 됐지만 사실 이들은 30억 원대 사기극에서 ‘환상의 콤비’였다. 2009년 황 전 비서를 보필하던 김 씨는 황 전 비서의 강연을 듣는 재력가들이 생겨나자 이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김 씨는 재력가들을 따로 불러 “주한미군 용역 사업을 받아 황 전 비서나 탈북자를 돕는 기금을 조성하게 됐다. 보증금과 소개비를 주면 사업권을 넘겨주겠다”고 제안했다.
윤 씨는 항상 김 씨 곁을 지키며 실제 사업권을 받을 수 있을지 의심하는 피해자들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윤 씨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알려진 주한미군사령관 특별고문 S 씨의 내연녀나 개인비서 연기를 하며 “S 씨가 내게 사업권을 줬으니 나를 믿으라”며 투자를 부추겼다. 하지만 S 씨는 사업 용역을 위탁받은 적도 없었고 윤 씨와는 친분만 있는 사이였다.
황 전 비서와 S 씨의 이름과 지위를 악용한 둘은 결국 피해자 3명으로부터 각각 21억5000만 원, 6억 원, 5억 원씩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1년이 지나도록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투자금도 돌려받지 못하자 S 씨 측으로부터 “사업 용역을 위탁받은 사실이 없다”고 직접 확인하면서 이들의 사기 행각도 들통이 났다.
2012년 경찰과 검찰 수사 결과 한국, 미국 등에서 무역업을 했던 윤 씨는 이미 미국 중앙정보국(CIA) 극동지역 고문 특별보좌관 행세를 하는 등 비슷한 사기를 저질러 왔다. 김 씨 역시 윤 씨의 범죄 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김 씨는 투자금 32억5000만 원 가운데 일부를 윤 씨의 형사사건 합의금으로 내기도 했다. 투자금은 김 씨의 사무실 운영비용, 윤 씨 아들의 대학 편입 청탁금 등으로 쓰였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명수배를 받았던 윤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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