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인생 수담]포기 않고 끝까지 따라붙는… 바둑도 연구도 ‘집요’ 그 자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2일 03시 00분


서효석 편강한의원 원장

《최근 일요일 오전에 찾은 서울 종로3가 서울기원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휴일에 이곳에서 보자고 한 이는 서효석 편강한의원 원장(70). 토요일까지 진료 예약이 꽉 차 있어 바둑 둘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프로에게 2점으로 버틸 정도의 실력이라는 사실을 미리 한국기원 관계자에게서 입수한 기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기자가 흑을 들고 시작한 바둑은 시종 복잡하고 난해했다.

바둑은 엎치락뒤치락했으나 흑이 덤을 내기 힘들었다. 이 코너에서 처음으로 계가까지 한 결과 기자가 3집반 차로 패했다. 졌지만 차이가 크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효석 편강한의원 원장은 예전 보건복지부 바둑대회에 출전했던 열댓 명의 전직 공무원, 업계 관계자들과 인연을 맺어오며 매달 한 번씩 바둑을 두는 모임을 갖고 있다. 그는 “바둑 둘 때가 다른 잡념을 잊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때”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효석 편강한의원 원장은 예전 보건복지부 바둑대회에 출전했던 열댓 명의 전직 공무원, 업계 관계자들과 인연을 맺어오며 매달 한 번씩 바둑을 두는 모임을 갖고 있다. 그는 “바둑 둘 때가 다른 잡념을 잊을 수 있는 가장 즐거운 때”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 원장은 아버지가 바둑 둘 때 어깨너머로 사활(死活)을 익혔다. 책은 보지 않고 실전 위주로 실력을 닦은 그는 경희대 한의대 다닐 때 이미 아마 5단이었다. 아마 강자의 대열에 합류한 건 전북 전주에서 개업한 뒤였다. “당시 환자가 없어 한가했어요. 늦게 방위로 근무하던 세미프로급 한의사와 처음엔 6점을 접고 뒀는데 1년 만에 2점으로 이길 정도로 기력이 쑥쑥 늘었지요.”

한국기원 지부 등이 개최하는 동네 바둑대회에서도 여러 번 우승할 정도로 ‘짱짱한’ 실력을 갖게 된 것.

“한의사와 약사 바둑대회에서 결승전에 나갔는데 제가 축을 잘못 읽어 초반부터 패색이 짙었어요. 상대의 멀쩡한 대마를 잡으러 갈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관전하던 조남철 선생(2006년 작고)께서 ‘동정이 가는 수’라고 할 정도로 가능성이 없었어요. 그런데 상대의 방심을 틈타 끝까지 쫓아가 대마 잡고 이겼습니다.”

그의 바둑에선 ‘집요’라는 단어가 느껴졌다. 이번 바둑에서도 그랬다. 그의 표현대로 ‘가도 가도 떨어져나갈 기미가 없는’, 아무리 불리해도 끝까지 따라붙는 바둑이었다.

그를 한의사계에서 유명하게 만든 편강탕 개발 과정에도 이런 집요함이 있었다. 편강탕은 편도선염을 비롯해 비염 천식 폐질환 아토피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편도선이 자주 붓는 체질이었던 그는 견디지 못할 정도로 아플 때 양방 병원을 찾아가야 했다. ‘내 병도 못 고치는 의사’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나를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아 밤낮으로 한의원에 있는 약재를 수백 번 배합한 끝에 편강탕을 개발할 수 있었죠.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최근엔 편강환도 만들어 보급하고 있습니다.”

그의 건강 이론은 ‘청폐(淸肺), 즉 폐가 깨끗해야 편도선(편도샘)이 튼튼해지고 면역력이 좋아져 장수한다는 것이다.

서효석 원장은 이달 초 열린 삼성화재배 개막식에서 중국 퉁멍청 5단과 특별대국을 가졌다. 편강한의원 제공
서효석 원장은 이달 초 열린 삼성화재배 개막식에서 중국 퉁멍청 5단과 특별대국을 가졌다. 편강한의원 제공
그가 요즘 두드리고 있는 시장은 중국. 우선 북미 지역의 화교를 상대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지난해 북미 지역에 35만 달러(약 4억 원)를 수출했는데 올해는 5배가량 많은 150만 달러가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엔 500만 달러까지 내다본다.

서 원장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때 한국 바둑 대표팀 주치의로 활약했고 2011년부턴 편강한의원이 후원하는 온라인 바둑대회를 여는 등 바둑 사랑이 남다르다. 얼마 전 끝난 ‘편강-신동아배 월드바둑 챔피언십’(총상금 1억200만 원)에선 중국의 퉁멍청 5단이 우승했다.

“편강배에서 우승한 기사는 곧 이어진 기전에서 우승하는 선례가 있어요. 안성준 6단과 커제 9단이 그랬어요. 퉁 5단도 최근 열린 삼성화재배 16강에 무난히 올랐으니 우승 가능성이 있죠. 하하.”

 
●나의 한수○
 
“끝날 때까진 끝내지 마라”
 
한 판의 바둑과 인생 모두 힘겨운 고비를 맞을 때가 있다. 끝나서 지는 게 아니라 포기해서 진다. 아직 가능성이 있다면 지레 끝내지 않고 마지막 힘을 모아 시도해 본다. 생각지도 못한 길이 열릴 수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서효석#편강한의원#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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