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층 한옥이라 내진설계 반영 안돼… 강진 발생 땐 무방비 노출 위험
대규모 인명-재산피해 우려
경북 경주시에서 발생한 지진의 피해가 한옥에 집중되면서 600여 채의 한옥이 몰려 있고 연간 10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찾는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에 대한 지진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주한옥마을의 한옥들은 내진설계가 반영돼 있지 않아 지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22일 전주시 등에 따르면 한옥마을 내 한옥은 대부분 연면적 100m² 이하이고 단층이어서 내진설계 의무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건축법 시행령에 연면적 500m² 이상, 3층 이상의 건축물에만 내진설계를 하게 돼 있다.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내진설계가 안 된 탓에 한옥은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옥은 전통 건축양식을 채택해 기둥이 굵지 않고 지붕은 무거운 구조라 유독 지진에 취약하다. 특히 전통 한옥의 기와는 흙 등을 사용해 연결하기 때문에 접착력이 강하지 않다. 이에 따라 지진으로 기와가 지붕이나 담장에서 떨어지면 인명 피해나 차량 파손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경주시에서도 유독 한옥이 큰 피해를 보았다. 경주시 황남동 한옥마을은 3317채 가운데 670채에서 벽체 균열, 기와 탈락 등의 피해가 났다. 경북도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기왓장이 떨어져 나갔다고 신고한 한옥이 경주에서만 2031채나 됐다. 기와를 수리하는 작업자들은 황남동 한옥 지붕을 수리하는 데 6개월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지진의 진앙에서 170여 km 떨어진 전주까지 진동이 느껴지고 400여 차례의 여진이 이어지면서 전주한옥마을도 ‘지진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주한옥마을사업소에 따르면 한옥마을 내 한옥 625채가 모두 내진설계를 갖추지 않았다. 전남 나주시 다시면 신광리와 복암리에 조성된 한옥마을 43채와 노안면 금안지구 24채도 내진설계가 전무하다. 건축법 시행령에서 정한 내진설계 의무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진설계 의무 대상 건축물은 연면적이 500m² 이상(창고, 축사 등 표준설계도서에 따른 건축물은 제외)이어야 한다. 원래 3층 이상, 1000m²이던 것이 지난해 9월 법 개정으로 내진설계 의무화 기준이 강화됐다. 3층 이상에 높이가 13m를 넘거나 국가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축물 등이 내진설계 의무 대상이다. 연면적 1000m² 이하 한옥을 지으려면 별도의 내진설계 심의 없이 건축허가신청서를 제출해 한옥보존위원회 심의를 거치면 된다.
전문가들은 한옥의 지진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소규모 한옥을 내진설계 의무 대상에 포함시키는 데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광객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 등 한옥마을 내 숙박업소에 지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주택보다 건축비가 훨씬 비싼 한옥에 내진설계까지 포함시켜야 하는 문제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일반적으로 한옥은 양옥보다 건축 비용이 2배 이상 더 들어 내진설계까지 의무화하면 비용 문제로 한옥 건립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은 “막대한 사회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당장 소규모 한옥을 내진 설계 의무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지진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건축물 자체에 철물 보강이나 하중을 받치는 횡력 보강 등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내진설계를 위해 한옥에 철골 구조물을 넣으려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 한옥 전문가는 “내진설계는 기본적으로 철골 구조물이 들어가야 하는데 한옥과 철골은 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한옥의 전통미를 살리면서 진동에 버틸 수 있도록 건축공학과 미학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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