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 쌀값, 20년전 수준 떨어져… “올해도 35만t 남아돌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3일 03시 00분


[쌀값 폭락 비상]정부 “올 수확량 420만t 추정”

 쌀값 폭락 사태가 심상치 않다. 20일 전북 익산 장수 순창 등 3개 시군 농민들은 쌀값 하락에 항의하며 트랙터로 논의 벼를 갈아엎는 시위를 벌였다. 전국쌀생산자협회는 “쌀값이 20년 전 가격으로 떨어졌던 지난해보다도 10%가량 하락한 상황”이라고 최근 밝혔다.

 
1996년 80kg 쌀 한 가마 가격은 평균 13만6713원으로 이달 15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집계한 전국 산지 쌀값 13만5544원보다 오히려 높았다. 20년간 전체 소비자물가가 70% 이상 오른 것을 고려하면 쌀값은 크게 내린 셈이다. 정부와 여당은 올해 수매량을 늘리고 쌀 재배 면적을 줄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지만 농민들의 반발과 시름은 더해 가고 있다.

○ 다급해진 정부

 농식품부는 22일 공공비축미 36만 t을 사들이고 해외 공여용으로도 3만 t을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조곡 40kg당 4만5000원을 우선 지급하고 민간 미곡종합처리장이 벼를 매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1조2000억 원, 농협이 1조30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하기로 했다.

 수확기에는 밥쌀용 수입 쌀의 입찰 물량과 횟수를 조절해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현재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내국민 대우 원칙 때문에 수입 쌀을 모두 가공용으로 쓸 수는 없고 밥쌀용 쌀을 수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쌀값 대책 당정간담회에서 김태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새누리당 간사는 “4만5000원으로 책정된 비축미 우선지급금을 지난해(5만2000원)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려 농민 부담을 덜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 쌀 소비량은 줄고 가격은 하락

 쌀값 하락의 원인으로는 갈수록 줄어드는 소비가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kg에서 지난해 62.9kg으로 반 토막이 났다. 이에 따라 지난달 말까지 국내 쌀 재고량은 정부 양곡 175만 t과 민간 양곡 25만 t을 합쳐 총 200만 t으로 사상 최대다. 쌀이 남아돌자 정부는 올해 처음 2012년산 비축미 10만 t을 사료용으로 민간에 판매했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4년째 풍년이 이어지는 것도 가격 하락의 원인이다. 쌀 생산량은 흉작이었던 2012년 401만 t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420만 t을 넘겼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이날 당정간담회에서 “올해 최종 쌀 수확량이 410만 t에서 420만 t 정도로 추정돼 35만 t 정도 초과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작년보다 생산량이 조금 줄지만 여전히 풍작이다. 폭염으로 벼 성장 시기에 기온이 높아지고 일조량이 늘어 소출이 좋았다.

 쌀 가격은 2013년 정점을 찍은 뒤 계속 하락세다. 2013년 17만 원을 넘어섰던 80kg들이 한 가마의 가격은 이듬해부터 계속 떨어졌다. 올해 9월 들어서는 농민들의 심리적 저지선인 14만 원대까지 무너졌다.

 농민들은 울상이다. 경북 예천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영균 씨(37)는 “농민의 90% 이상은 쌀값 폭락을 걱정하고 있다”면서 “추석 직전 전남에서는 쌀 한 가마가 8만 원대에 거래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걱정이 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여러 단계 유통 구조 등 개선해야

 산지 쌀 가격이 떨어져도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 변화는 크지 않다. 복잡한 유통구조를 거치며 떨어지지 않는 쌀값이 소비 촉진을 방해하고 있다. 쌀의 유통 과정은 농민-농협·민간 미곡종합처리장(수매)-도매업체(가공 및 유통)-유통업체-소비자 등 4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유통 마진이 붙고, 단계별로 물류비가 추가돼 가격이 상승한다.

 농민들은 정부의 매입 물량과 우선지급금이 쌀값을 안정시키기에 턱없이 적다고 주장한다. 이날 서울 대학로에서는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쌀생산자협회 등 농업인 단체가 ‘쌀값 대폭락 박근혜 정권 퇴진 전국농민대회’를 열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이종혁 정책부장은 “36만 t 매입이라면 정부가 쌀값 안정 의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21일 추진 계획을 밝힌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 축소도 효과를 거둘지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당정간담회에서 김 장관은 “진흥지역 농지를 (정부가) 앞장서서 해제하는 건 통일도 대비해야 하고 한번 해제하면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보수적이고 제한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혜령 herstory@donga.com·홍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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